원로·고문 칼럼
작성자 대종회
작성일 2015-02-17 (화)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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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공학박사


 

우리의 자랑스런 선조 김양


 

-강릉김씨 인터넷 족보 탄생을 축하하며-


 

  나는 젊은 시절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의 농업 수리시설인 전북 김제 벽골제(碧骨堤)에 놀러간 일이 있다. 그때 촌로로부터 “벽골제 증축에 크게 기여한 분이 바로 강릉김씨 김양(金陽)이란 인물이다”고 한말을 기억하고 있다. 신라시대 장보고(張保皐)사망후 청해진(淸海鎭)의 피해가 막심하자, 당시 신라 조정의 대신 이었던 김양은 청해진 백성들을 호남평야의 중심지인 벽골군(지금의 김제시)으로 이주시켜 대대적인 수리사업을 통하여, 김제 평야의 농업을 발전시키므로써 오늘의 우리에게 풍부한 먹거리를 제공하는데 공헌하신 분이시다.



  이순신 장군 어록중 “이나라의 군량미를 호남에 모두 의존하였으니 만약 호남이 없었더라면 이나라 또한 없었을 것이다(國家軍儲 皆靠湖南 若無湖南 是無國家)”라는 유명한 글귀가 있다. 오늘날 전세계적인 식량위기를 맞이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통일신라시대 우리 선조인 김양의 선견지명이 없었다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먹고 살아왔겠는가 하는 다소 과장된 생각도 든다.

 

  조선시대  사학자 서거정(徐居正)은 동국통감(東國通鑑)을 지으면서 신라시대의 인물을 거론하였는데 “신라의 영웅호걸은 김유신(金庾信)이요 공명정대 한분은 강릉김씨 김양이다” 라고 평한바가 있다. KBS 사극 해신 장보고 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김양은 우리의 시조이신 명주군왕의 증손(曾孫)이시다. 삼국사기 열전에 의하면, 김양이 태어난 것은 신라 제40대 애장왕(哀莊王 9년-서기 808년)때이고, 30세의 젊은 나이에 신라 제 45대 신무왕(神武王)옹립에 결정적 공을 세웠으며, 생전에는 시중(侍中) 벼슬을 지내셨고, 사후에는 태종무열왕의 능렬에 배장(陪葬)되신 분이시다.


  어디 우리선조가 신라시대 김양 한분뿐 이랴, 고려시대 여진 9개성을 반환 받는데 공헌한 문하시중(門下侍中) 김인존(金仁存), 조선시대 한국최초의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를 저술하신 생육신 김시습(金時習), 근대문학의 선구자로 날개의 작자 이상(본명 金海卿), 현존하는 인물로 “숲속의 시인에게”로 유명한 재소(在蘇)작가 아나톨리 김 등 수많은 명현 지사를 배출한 가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역사를 간과하며 후손을 위한 배려가 결여되기 쉽다. 바쁘다보니 우리 조상들의 업적과 훌륭한 능력을 모르고 지내기 일쑤다. 이러한 시점에서 을유대보(乙酉大譜)의 오자, 탈자, 계보 등을 교정하여 세계 최초의 인터넷 족보가 탄생된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아울러 대종회로부터 특별위원장직을 맡아 수행하신 서울종친회 김재경 회장께도 감사를 드린다.



2008. 5. 2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공학박사 

  (강릉김씨서울종친회 고문)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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