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시간여행
작성자 대종회
작성일 2020-02-24 (월)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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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始祖列傳 - 판문공 동두천파 중시조 25세 휘 연경(演慶)

오래 전부터 <중시조열전> 이란 제목으로 중시조 조상님들의 뛰어난 업적을 연구하여 후손에게 알려야 한다는 기획을 구상하고 있던 차에 마침 강김 서울종친회장님의 직계 선조 동두천파 중시조 연경과 외아들 몽상, 몽상의 3남 익겸을 위 열전의 1탄으로 보고합니다.

본 <중시조열전>의 목적은 조선시대의 품관직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하므로써 젊은 종인 여러분들에게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함이며 또 <족보 내용보기>의 기록에 탈루 및 오류가 있다면 이를 보완하고 수정하기 위한 것입니다.

먼저 종친회 홈피 [뿌리탐구] <중시조와낙향조> “제30절 판윤공 동두천파” 안내문과 <족보 내용보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 중시조와낙향조> 제30절 판윤공 동두천파

판윤공 충렬(忠烈)의 2자인 연경(演慶)은 선조조 문과급제 후 성균관 전적과 사헌부 지평을 거쳐 승정원 좌승지를 지냈다. 3孫 익겸(益謙)의 후손을 동두천파라 하며 재실 숭모재(崇慕齋)와 2개의 종중회관이 있다. 후손 교육을 위한 장학제도가 탄탄하다.

< 족보 내용보기>

연경 (演慶) 25 子 충렬 (忠烈) 종윤 (宗胤) 귀형 (貴亨) 한림공 판윤공 동두천  

子 演慶(연경)◁
一五四三年 中宗 癸卯 生 通政大夫
丁丑 八月十三日 卒
[墓]坡州市 交河 樓洞 甲坐◁
[配]淑夫人 延安金氏 父 執義 瓘 祖 進士 慶和
[墓]合부◁

자 연경
1543년 중종[38년] 계묘년 생 통정대부[정3품 당상]
정축년[1577, 선조10년 / 1637, 인조15년] 8월13일 졸, 향 35세 / 95세
[묘] 파주시 교하(면) 루동 갑좌
[배] 숙부인 연안김씨 부 집의 관, 조부 진사 경화
[묘] 합장묘, 부좌

* <중시조와낙향조> 안내문에 “연경(演慶)은 선조조 문과급제 후 성균관 전적과 사헌부 지평을 거쳐 승정원 좌승지를 지냈다”고 되어 있는데, 안타깝지만 연경은 문과급제자가 아니다. 강김 문과급제자는 모두 98명이고, 강서김씨로 분적한 김반과 문과급제후 다시 중시에 합격한 경우까지 포함하여 총 99명 100회이다.

* 성균관 전적(典籍)[정6품], 사헌부 지평(持平)[정5품], 승정원 좌승지[정3품 당상]을 지내셨다고 하지만, 위 내용은 무언가 착오로 보인다. 성균관 전적, 사헌부 지평, 승정원 승지 등의 관직은 문과급제자가 아니면 거의 절대로 맡을 수 없는 관직이기 때문이다.

* 승정원(承政院) 승지(承旨) - 조선시대 승정원(承政院)의 정3품 당상관. 도승지(都承旨)·좌승지(左承旨)·우승지(右承旨)·좌부승지(左副承旨)·우부승지(右副承旨)·동부승지(同副承旨) 등 6승지를 말하는데, 각각 이호예병형공 등 6조를 담당하며 오로지 의전서열일뿐 도승지가 좌승지보다 더 높다는 뜻은 아니다. 승지는 보통 2명 정도가 숙직을 한다.  

연경의 생년은 1543년 계묘년으로 확인되고 있지만, 졸년은 단순히 간지 정축년만 기재되어 있는데, 만약 1577년(선조10년) 정축년이면 향 35세에 졸하신 것이고 1637년(인조15년) 정축년이면 향 95세에 졸하신 것이 된다. 사마시 합격기록도 검색되지 않고, 따라서 별다른 관력이 없는 학생 신분으로 35세에 통정대부(通政大夫)에 가자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하므로 1637년 정축년에 향 95세로 졸하신 것이 맞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연경의 품계가 통정대부[정3품 당상]에 오른 것은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왜냐하면 조정에서 큰 경사가 있을 때 별다른 관력이 없는 학생(學生)의 경우라도 80세 또는 90세 이상의 노인에게 통정대부를 가자하고 궤장 등을 하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관점에서 연경은 비록 소과나 대과 등 급제사실은 없지만 은일(隱逸)[향리에 있는 대학자]로서 - 이 경우 연경에게 자(字)와 호(號)가 없다는 것이 조금 의아하지만 - 제자들의 추천이 있었을 가능성도 비정할 수 있겠다.

연경의 처부 연안김씨 김관(金瓘)은 - 자 백온(伯溫), 을유 1525년생, 본관 연안, 관력 집의(執義)[사헌부 종3품] - 명종(明宗) 7년(155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생진양과합격, 명종(明宗) 17년(1562) 임술(壬戌) 별시(別試) 병과(丙科) 17위 문과급제의 기록이 검색되는데, 이상하게도 김관의 부친이 <족보 내용보기>의 김경화(金慶和)가 아니라 김민사(金敏思)로 되어 있고, 진사 김경화의 진사급제 기록도 검색되지 않으니 조금 이상하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김관이 김경화에게 양자로 입양된 것이 아닌가 한다. 또는 그 반대의 경우이거나.

장인 김관(1525년생)과 사위 김연경(1543년생)의 연배차이는 18세이므로 옹서지간으로서 가능한 나이로 보인다.

몽상 (夢祥) 26 子 연경 (演慶) 충렬 (忠烈) 종윤 (宗胤) 한림공 판윤공 동두천

子 夢祥(몽상)◁
字 景錫
一五九二年 宣祖 壬辰 生 通德郞
庚辰 六月二十三日 卒
[墓]東豆川市 上牌 魚雲洞 丑坐◁
[配]延日鄭氏 父 進士 역[氵+奕] 祖 仁源 曾祖 司果 潚 外祖 陽川 許崙
[墓]부右◁

몽상
자 경석
1592년 선조[25년] 임진년 생 통덕랑[정5품 상계]
경진[1640, 인조18년] 6월23일 졸, 향 49세  
[묘] 동두천시 상패 어운동 축좌
[배] 연일정씨 부 진사 역, 조 인원, 증조 사과[5위 정6품] 축, 외조 양천허씨 허륜
[묘] 부우(* 注意, 부좌가 아니라 부우)

* 통덕랑은 정5품 상계로 음관 출사자들이 아마도 승진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최고위 품계일 것이다. 몽상은 음관으로 출사하였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통덕랑까지 승차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공께서 얼마나 열성적으로 관직생활을 하셨는지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은 아버지가 연세 50에 낳은 귀한 외아들이다. 다른 한편으로 조정에서는 부모가 장수하실 경우 그 아들을 덕인(德人)으로 칭송하며 출사길에 약간의 도움을 주는 관행이 있는데 - 노부모가 기뻐하시며 더욱 장수하시라고 - , 몽상은 장수하신 아버지 연경의 음덕도 보았을 것이다.

몽상의 장인 연일정씨 정역(鄭㴒)(1552년생)은 자가 정백(淨伯)이고 [생원진사시] 선조(宣祖) 36년(1603) 계묘(癸卯)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1위로 합격한 기록이 있는데, <내용보기>에는 진사로 되어 있어, 아마도 “진사”는 “생원”의 오기가 아닐까 한다.  

처증조부 정축은 <한국대백과 인물사전>에 수록되어 있어 간단히 인용하기로 한다.

정축(鄭潚) 1491년(성종 22)∼1573년(선조 6).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이조정랑 완(浣)의 아들이다. 1528년(중종 23) 진사가 되고, 1531년 음서로서 참봉을 지냈다. 그뒤 광흥창부봉사(廣興倉副奉事)·의금부도사·사온서직장(司醞署直長)·주부·사헌부감찰·군자감판관을 두루 거쳐, 돈령부부정에 이르렀다. 1573년(선조 6) 83세로 통정(通政)의 계(階)를 하사받았다.

* 처증조부 정축이 83세로 통정대부에 올랐다는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연경(향95세졸)과 같은 맥락이다.

익겸 (益謙) 27 子 몽상 (夢祥) 연경 (演慶) 충렬 (忠烈) 한림공 판윤공 동두천  

子 益謙(익겸)◁
字 士靜
一六三○年 仁祖 庚午 八月九日 生 進士
一六八○年 肅宗 庚申 十二月三十日 卒
[墓]魚雲洞 先塋 癸坐◁
[配]南陽洪氏 父 熙忠 祖 箴 曾祖 司直 守紀 外祖 昌寧 曺挺斗
[墓]合부◁

익겸
자는 사정
1630년 인조[8년] 경오 8월9일 생 진사
1680년 숙종[6년] 경신 12월30일 졸
[묘] 어운동 선영 계좌
[배] 남양홍씨 부는 희충, 조는 잠, 증조는 사직[5위 정5품] 수기, 외조는 창녕조씨 조정두
[묘] 합장묘, 부좌

* 익겸이 진사로 되어 있으나, 안타깝게도 진사 합격 기록은 검색되지는 않는데, 현재 검색기능이 완벽한 것은 아니므로 아마도 족보의 기록은 맞을 것이다.

* 처부 홍희충, 처조부 홍잠, 처증조부 홍수기, 처외조 조정두 모두 검색되지 않는다.

판윤공 동두천파의 중시조 연경(演慶)(1543-1637)은 판윤공 충렬(忠烈)(1503-1560)의 차남이시며 무려 95세까지 장수하셨다. 동두천파가 중시조 연경에서 연원하여 외아들 몽상(1592-1640)과 몽상의 3남 익겸(1630-1680)으로 이어지면서 오늘날 동두천파 후손들이 크게 번창하고 있는 것도 다 판윤공 이하 조상님들의 음덕일 것이다.  

판윤공 충렬은 강김 문과급제자 98명 중에서 장원급제하신 유일무이한 분이다. 판윤공에 관한 내용은 <강김 문과급제자> 편에서 따로 다루기로 하며, 중시조열전 제1편 동두천파 중시조 연경은 이것으로 마무리한다. 끝.

숙간공 백동파 도정공지파 38세 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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