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시간여행
작성자 대종회
작성일 2020-02-24 (월)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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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공 김행과 사위 동강 김우옹 <6 필자후기 및 끝>

장포공 김행과 관련하여 반드시 언급했어야 했는데, 본 글이 일차적으로 장포공 가계의 <족보 내용보기>를 살펴보는 것이었고, 둘째로 의성인 동강 김우옹이 과연 장포공의 사위가 맞는지에 초점을 맞춘 관계로, 문맥과 지면 관계상 생략할 수 밖에 없었던 부분을 다시 언급하면서 장포공(1532-1588) 및 장포공의 아들 손자들과 다음의 인물들이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 필자후기 형식으로 끝맺음할까 합니다.

[墓]先塋乾坐 碣銘 左議政 浦渚 趙翼 撰 叅判 (判)水北 金光炫 篆 孫○ 書

[묘]는 선영 건좌이고, 갈명이 있는데 좌의정 포저 조익이 찬하고, 참판 수북 김광현이 전하고, 손자 우(楀)가 서했다.

* 갈명 또는 묘갈명(墓碣銘)이라 함은 비문(碑文)의 한 형태를 말하는데, 여기서 갈(碣)은 산문이고 명(銘)은 운문, 즉 시(詩)란 뜻이다. 즉 장포공의 행장을 산문으로 소개하고 또 밑에 장포공의 인생을 간단명료하게 요약할 수 있는 시를 적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찬자 포저 조익의 몫이다.

우선 포저 조익의 가족관계를 <한국대백과 인물사전>에서 간단히 알아보는데, 포저 조익의 위상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그는 풍양조씨의 간판스타 중의 한명일뿐만 아니라 조선 중기를 대표하는 대학자 중의 한명이다.

조익(趙翼) 1579년(선조 12)∼1655년(효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풍양(豊壤). 자는 비경(飛卿), 호는 포저(浦渚)·존재(存齋). 오위도총부부총관 안국(安國)의 증손으로, 현령 간(侃)의 손자이고, 중추부첨지사 영중(瑩中)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찬성 윤근수(尹根壽)의 딸이다. 장현광(張顯光)·윤근수의 문인이다.

* 김광현 전(篆)이라 함은 비문의 전면에 비주인공의 품관직을 김광현이 전서체로 썼다는 뜻인데, 어지간한 명필이 아니면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수북 김광현(1584-1687)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 전투에서 비분강개하여 자결한 선원 김상용(1561-1637)의 아들이고, 남한산성 척화파의 대표 청음 김상헌(1570-1652)의 장조카이다. 이들 안동김씨(신파), 일명 장동김씨가 바로 순조의 장인이며 안동김씨 세도정치 김조순의 직계 조상이다.

* 서(書)라 함은 찬한 내용을 비문의 규격에 맞춰 썼다는 것이고, 이 서를 갖고 석공이 비문에 각(刻)를 하게 되는데, 필자는 이 각을 하는 석공도 대단한 예술가라고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손자 < > 가 서했다고 공란으로 남아있는데, 어떻게 우(楀)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것은 충엄과 우엄의 아들들, 장포공의 6명의 손자들의 약력을 살펴보면 쉽게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우 (楀) 27 子 충엄 (忠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파주파      
역 (櫟) 27 子 충엄 (忠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파주  

훤 (楦) 27 子 우엄 (友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공주파      
광 (桄) 27 子 우엄 (友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공주      
항 (杭) 27 子 우엄 (友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공주      
건 (楗) 27 子 우엄 (友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공주  

장포공의 갈명을 서한 충엄의 장남 우의 약력을 <족보 내용보기>를 통해 알아보기로 한다.

우 (우) 27 子 충엄 (忠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파주파

子 우(楀)◁
字 茂伯 號 睡窓 李東岳門人
一六○七年 宣祖 丁未 十二月十三日 生
仁祖 戊子式年 進士
擢 孝宗 乙未庭試 春場 文科
歷 三司 藝館直提學 結城縣監 平昌郡守
○公少 受業于李東岳安訥 文學夙詣 晩登及第 爲時流所擠斥補 平昌卒于任所
南藥泉 李白軒 宋雪村 成梅邊 趙翠屛 朴久堂 趙松谷 詣公 有誄詞◁
[配]德水李氏 父 僉樞 安謙 祖 進士壯元 贈吏參 坰 曾祖 元禎 外祖 參奉 李海
[墓]부◁

자 무백 호 수창 동악 이안눌(처숙부) 문인
1607년 선조 정미 12월 13일 생
인조 무자식년(인조 26년 1648) 진사
탁 효종 을미정시(효종6년 1655) 춘장 문과
관력 삼사 예관직제학 결성현감 평창군수
- 공은 어려서 동악 이안눌에게서 배웠고, 문학에 일찍 깨우쳤으나, 만년에 급제하였다.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배척하였으며, 평창 임소에서 졸하였다.
약천 남구만(1629-1711) 백헌 이경석(1595-1671) 설촌 송시철(1610-1673)
매변 성  직(1586-1680) 취병 조  형(1606-1679) 구당 박장원(1612-1671)
등이 모두 공을 예알하였으며 뢰사(만사, 조사)가 있다
[배] 덕수이씨 부 첨추 안겸, 조 진사장원 증이참 경, 증조 원정, 외조 참봉 이해

* 여기서 처조부가 이경(李坰)이라고 되어 있는데, 덕수이씨 가계도에 보면 이형(李泂)으로 되어 있고, 다른 형제들이나 종형제들도 모두 물수변 부수에 외자를 사용한 것을 참조하면 경은 형의 오류임에 틀림없다.

* 김우의 장인 이안겸(1563년생)의 동생이 이안눌(1571-1637)이므로 김우는 처삼촌을 사사한 것이고, 이 집안의 또 다른 대학자 이식(李植)(1584-1647)과 김우의 처 덕수이씨는 8촌 남매간이다.

* 덕수이씨하면 우선 충무공 이순신(1545-1598)과 율곡 이이(1536-1584)가 떠오르는데, 율곡은 이안눌의 9촌 숙부뻘이다.

* 우의 생년(1607)은 기재되어 있으나 졸년은 실전되었는데, 비교적 너무 늦은 42세의 나이에 진사시(1648)에 합격하고 또 49세에 문과급제(1655)한 다음 대략 10년에 걸쳐 여러 관력을 마치고 평창군수로서 임소에서 졸하셨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략 1665년 정도에 졸하신 것으로 비정할 수 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조선문과방목>에 기유(己酉, 1669) 향(享) 62에 졸하신 것으로 기재되어 있어 졸년을 확일할 수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아들이 선친의 행장을 잘 알고 있는 친구분들이나 제자들에게 행장을 부탁하게 되는데, 장포공(1532-1588)의 경우 아들 충엄(1581-1649)이 무려 50세에 태어났고, 장포공이 졸하셨을 때 충엄은 겨우 8세에 불과했으므로 이것이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며 그래서 손자 우가 친구들인 조익과 김광현에게 조부의 행장과 묘갈명을 부탁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끝으로 우엄의 장남 훤의 이력에 특이한 점이 있어 <족보 내용보기>를 살펴보기로 한다.

훤 (훤) 27 子 우엄 (友淹) 행 (行) 국평 (國枰) 한림공 장포공 공주파

子 훤(楦)◁
字 伯憲 號 江叟
一六一○年 光海 庚戌 三月十九日 生
居沔川時 本江華金氏
仁祖 丙戌 式年 進士 監察 通訓大夫 慶安道前行察訪
一六八八年 肅宗 戊辰 五月十三日 卒
[墓]先塋艮坐◁
[配]坡平尹氏 父 弼善 忠憲公 烇 祖 吏參 世昌 曾祖 贈左承旨 暾 外祖 月汀 海平 尹根壽
[墓]城頭面 於雲洞 酉坐◁
[配]丹陽禹氏
[墓]見山里◁

아들 훤
자 백헌 호 강수
1610년 광해 경술년 3월19일 생
면천거주시 본관 강화김씨로 변경
인조 24년 병술(1646) 식년 진사합격, 감찰[사헌부 정6품] 통훈대부[정3품 당하] 경안도행찰방[종6품]
1688년 숙종 무진년 5월 13일 졸
[묘] 선영 간좌
[배] 파평윤씨로 부는 필선 충헌공 전, 조부는 이참 세창, 증조는 증좌승지 돈, 외조는 해평윤씨 월정 윤근수
[묘] 성두면 어운동 유좌
[배] 단양우씨
[묘] 견산리

* 면천에 거주할 때 본관을 강화김씨로 바꾸었다는 것인데,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면천김씨의 양자로 들어가게 된 경우가 아닐까 한다. 김훤의 본관이 강화라는 사실은 김훤의 사마시 방목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훤(金楦)

[생원진사시] 인조(仁祖) 24년(1646) 병술(丙戌)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52위

자 백헌(伯憲)
생년 경술(庚戌) 1610년
합격연령 37세
본관 강화(江華)  
거주지 면천(沔川)

[부]
성명 : 김우엄(金友淹)
관직 : 행진산군수(行珍山郡守)
품계 : 통훈대부(通訓大夫)

* 慶安道(前)行察訪 - 慶安道行察訪

전(前)자가 들어간 이유를 필자는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아마도 잘못 첨가된 것으로 보이는데, 찰방은 종6품의 관직인데 품계가 높고 관직이 낮을 경우 앞에 행(行)자를 붙혀 사용하며, 문맥상 아마도 김우가 말년에 통훈대부[정3품 당하]의 높은 품계에서 위 찰방직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配]坡平尹氏 父 弼善 忠憲公 烇 祖 吏參 世昌 曾祖 贈左承旨 暾 外祖 月汀 海平 尹根壽

<족보 내용보기>에는 김우의 처 파평윤씨의 외조부, 즉 김우의 장인 충헌공 윤전[초명 찬(燦)]의 장인이 해평윤씨 월정 윤근수로 되어 있는데, 윤전의 <조선문과방목>에는 처부가 해평윤씨 윤환(尹晥)이고 윤환의 아버지가 윤근수로 되어 있고 또한 윤근수 세계도에서도 확인되므로, <족보 내용보기>의 내용이 오류임을 알 수 있다. 즉 윤근수는 외조부가 아니라 외증조부가 되는 것이다. 윤근수의 형이 영의정 윤두수인데, 윤두수의 먼 후손이 바로 해위 윤보선 대통령이다. <끝>

숙간공 백동파 도정공지파 38세 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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