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시간여행
작성자 대종회
작성일 2020-02-24 (월)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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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포공 김행과 사위 동강 김우옹 <4>

子 友淹(우엄)◁
字 子范
一五八四年 宣祖 甲申 生
仁祖朝 官 敎官 監察 珍山郡守 副正 通訓大夫
一六六二年 顯宗 壬寅 十二月一日 卒
[墓]公州 半灘面 見山里 乙坐
墓志 文敬公 魯西 尹宣擧 撰 碣銘 文成公 明齋 尹拯 撰 大司憲 申翼相 篆 孫 僉樞 桓瑞 書◁
[配]全州李氏 父 正郞 商益 祖 正郞 凝 曾祖 府院君 惟貞 外祖 綾城 具潤德
[墓]부◁
[配]寧越嚴氏 父 郡守 悅 祖 直長 仁進 曾祖 參奉 昞 外祖 淸風 金洽
[墓]부◁
[配]密陽劉氏
[墓]唐津郡 新平面 上梧里 山六三의一二 辛坐◁

아들 우엄
자는 자범이고,
1584년 선조 갑신년 생이고,
인조묘에 관력은 교관, 감찰, 진산군수, 부정, 통훈대부
1662년 현종 임인년 12월1일 졸했다.
[묘]는 공주 반탄면 견산리 을좌
묘지는 문경공 노서 윤선거가 찬하고, 묘갈은 문성공 명재 윤증이 찬하고, 대사헌 신익상이 전하고, 손자 첨추 환서가 서했다.
[배] 전주이씨, 부는 정랑 상익, 조는 정랑 응, 증조는 부원군 유정이고, 외조는 능성구씨 구윤덕이다.
[묘] 부
[배] 영월엄씨, 부는 군수 열, 조는 직장 인진, 증조는 참봉 병이고, 외조는 청풍김씨 김흡이다.
[묘] 부
[배] 밀양유씨
[묘] 당진군 신평면 상오리 산63-12 신좌

* 무엇보다도 유명학자였을 우엄에게 호가 없다는게 일단 이상하며 그리고 행-우엄 부자지간의 나이차가 무려 52년이나 된다. 그렇다면 아버지 장포공이 1588년에 돌아가셨을 때 아들 우엄은 겨우 4세였다는 것이다.

* 파평윤씨 노서 윤선거(1610-1669)는 우암 송시열(1607-1689)의 친구인데, 아들이 윤증고택[충남 논산 노성면]으로 유명한 명재 윤증(1629-1714)이다. 충남 대전과 논산, 충북 옥천 영동 등지는 원래 기호서인(畿湖西人) 송시열계 노론의 총본산이다. 그러나 같은 서인이면서도 윤선거와 송시열의 학맥은 조금 차이가 있다. 송시열은 이이 - 김장생(1548-1631) 계열이고, 윤선거는 성혼 - 윤황(1571-1639) 계열이다. 아버지 장포공의 절친 성혼의 우계학맥이 경기 파주에서 충남 논산의 윤황(우계의 사위) - 윤선거 - 윤증으로 이어지는 가교에 우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엄의 묘재 공주는 처가의 세거지였을 것이다.

* 西人 湖西 少論이 형성되는 과정에 우계 성혼을 직접 사사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우계의 직제자를 사사했을 것으로 보이는 우엄이 호서지방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나중에 별도로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 아버지 윤선거가 돌아가시고, 아들 윤증이 스승이자 아버지의 친구인 송시열에게 아버지의 행장을 부탁했는데, 송시열이 윤선거의 병자호란 강화도 행적을 비난하는 내용을 적어넣자, 윤증이 스승 송시열을 비난하면서 젊은 선비들을 모아 소론(少論)으로 갈라섰다는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이다. 서인의 영수 송시열(宋時烈)과 그의 제자 윤증(尹拯) 사이에 일어난 대립을 회니시비(懷尼是非)라고 하는데, 송시열이 살던 곳이 회덕(懷德)[현재 대전 대덕구]이고, 윤증이 살던 곳이 논산 이성(尼城)이어서 그 첫 자를 따라 회니시비라 했다.

* 신익상(1634-1697)은 고령신씨로 세조대 신죽주의 후손이다.

* 손자 첨추(僉樞) 환서는 우엄의 차남 광의 차남이다. 첨추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정3품 당상]의 약칭이고, 중추부는 왕의 직계아문으로 변방의 장군을 지낸 무관들이 말년에 임명되어 조정에서 왕의 자문역할을 하는 관서이다. 그러나 당장에 적당한 보직이 없는 문관들도 자주 임용된다. 그러나 아쉽게도 <조선왕조실록>에서 김환서의 첨추 제수 기록은 검색되지 않는다.

우엄은 그밖에도 <한국대백과 인물사전>에 등재되어 있다.

김우엄(金友淹) 생몰년 미상.

자는 자범(子范).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김행(金行)이다. 완산이씨(完山李氏)와 결혼하였고, 형제로 김충엄(金忠淹: 1581∼?), 김효엄(金孝淹)이 있다. 40세 무렵에 벼슬을 하기 시작하여 50세 무렵에 고을 수령이 되었고 부정(副正)에 이르러 80세 무렵에 죽었다.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의 문인이다. 묘는 공주(公州) 견산(見山) 유향(酉向)에 있다.

* 윤증의 문인이라 함은 주로 윤증의 제자 또는 제자의 제자 등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인데, 윤증보다 45세 연상이고 항렬상 할아버지뻘되는 김우엄(1584-1662)이 윤증의 문인이라는 설명은 어폐가 있다. 항렬상 할아버지뻘이라 함은 장포와 우계가 절친이고, 우계의 사위가 윤황[윤증의 조부]이므로 장포의 아들 우엄은 윤황과 처남매부지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엄은 윤증 중심의 소론형성에 학문적 연원을 이루었던 인물로 보이는데, 따라서 “김우엄의 문인중에 명재 윤증이 유명하다” 등으로 위 내용을 고쳐야 할 것이다.

위 인물사전에서 우엄의 부인을 완산이씨라고 했는데, 완산이씨는 전주이씨의 또 다른 표현이다. 우엄의 처가쪽 인물을 살펴보는데, 중요한 것은 4명의 아들이 누구의 소생인지 염두에 두고 살펴야 한다.

[配]全州李氏 父 正郞 商益 祖 正郞 凝 曾祖 府院君 惟貞 外祖 綾城 具潤德
[配]寧越嚴氏 父 郡守 悅 祖 直長 仁進 曾祖 參奉 昞 外祖 淸風 金洽
[配]密陽劉氏

우엄의 장인이자 장포공의 사돈인 전주이씨 이상익은 검색되지 않으며, 대신 처조부 이응(1535년생)은 [생원진사시] 명종(明宗) 16년(1561) 신유(辛酉) 식년시(式年試) 생원 3등(三等) 14위 진사 2등(二等) 6위 합격 [문과] 명종(明宗) 21년(1566) 병인(丙寅) 별시(別試) 병과(丙科) 4위 급제 기록이 있고 또 처증조부 이유정(생몰미상)도 [생원진사시] 명종(明宗) 1년(1546) 병오(丙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3등(三等) 48위 합격기록이 있고, 그밖에 처고조부 이억손(1497-1538)은 [생원진사시] 중종(中宗) 14년(1519)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 생원(生員) 진사(進士) 양과합격, [문과] 중종(中宗) 17년(1522)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1위 급제 기록이 있어 그 직계조상을 고찰할 수 있다. 즉 우엄의 장인 상익은 조선2대 임금 정종의 10남 덕천군의 7대손으로 그의 가계를 <표>로 보이면 다음과 같다.

정종 - 10남 德泉君 厚生 - 1남 新宗君 孝伯 - 1남 莞城君 貴丁 - 2남 商山君 繼保 - 1남 億孫 - 惟貞 - 凝 - 商益 - (김우엄)

따라서 우엄의 묘재 충남 공주 견산 근역에 종실 덕천군파의 식읍(食邑) 내지는 사지(賜地)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 曾祖 府院君 惟貞

우엄의 처증조부 이유정에게 부원군의 군호가 있었다고 했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부원군(府院君)의 군호는 보통 공신(功臣)에게 하사하는 것으로 공신의 본적지나 세거지의 별칭을 붙여 oo부원군이라고 한다. 경주이씨 이항복(李恒福)을 경주의 옛이름 오성을 따서 오성 부원군(鰲城府院君)으로 봉군한 경우가 그 한 예다. 그러면 흔히 오성대감(鰲城大監)이라고 호칭한다. 그러나 전주이씨 종친에게는 부원군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제로 이유정에게 부원군이란 군호가 봉군되었다는 기록도 없다.

왕비 소생의 대군(大君)은 4대 증손까지, 후궁 소생의 군(君)은 3대 손자까지 군호(君號)가 세습되는데, 종친부(宗親府)에서 관리한다. 대군과 공주(公主)는 무품(無品)이고 군과 옹주(翁主)은 정1품~종2품으로 예우한다. 대군 및 군의 품계는 하대(下代)로 내려가면서 정3품 당상 도정(都正) 정3품 당하 정(正) 종3품 부정(副正) 정4품 수(守) 종4품 부수(副守) 정5품 령(令) 종5품 부령(副令) 정6품 감(監)으로 차츰 낮아지는데, 본직은 없고 단순명예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 이계보의 처음 봉작은 상산수(商山守)였는데, 생전에 공적이 있어 사후에 상산군(商山君)으로 증군(贈君) 가자(加資)된 경우다.

처외조부 능성구씨 구윤성도 검색되지 않는다.

그리고 영월엄씨 처가 인물을 살펴본다.

[配]全州李氏 父 正郞 商益 祖 正郞 凝 曾祖 府院君 惟貞 外祖 綾城 具潤德
[配]寧越嚴氏 父 郡守 悅 祖 直長 仁進 曾祖 參奉 昞 外祖 淸風 金洽
[配]密陽劉氏

우엄의 장인 엄열, 처조부 엄인진, 처증조부 엄병, 처외조부 김흡 등 모두 검색되지 않는다.

다음은 장포공의 사위들을 살펴본다.

윤지 (尹贄)     26 사위 행 (行) 국평 (國枰) 사희 (士熙) 한림공 장포공 파주파      
이호영 (李昊英) 26 사위 행 (行) 국평 (國枰) 사희 (士熙) 한림공 장포공 파주파  

서 尹 贄(윤지)◁
參奉◁

참봉을 지냈다고 하는 장포공의 첫째사위 윤지는 검색되지 않으므로 파평윤씨로 짐작되지만 본관도 알 수 없는데, 아무튼 장포공의 딸이 윤지에게 시집가서 후손도 없이 일찍 사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 李昊英(이호영)◁
進士 子 崇祚◁

진사가 누구 것인지 애매한데, 위 문맥상 사위 이호영의 것으로 보이지만 이호영은 검색되지 않으며, 대신 외손자 이숭조는 기해(己亥) 1599년생으로 인조(仁祖) 2년(1624) 갑자(甲子) 증광시(增廣試) 진사 3등(三等) 3위로 합격한 기록이 있어 진사는 숭조의 것이다. 그렇다면 子 崇祚 進士 ◁ 로 바꿔야 한다.

본관은 한산이고 거주지는 장단(長湍), 父 李昊英 조봉대부(朝奉大夫) 弟 이다조(李多祚)라고 기록했는데 조봉대부는 종4품 하계의 높은 품계이다. 나중에 추증(追贈)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외손자 이숭조가 1599년생이므로 사위 이호영은 이른 나이인 20세에 숭조를 낳았다면 1579년생 정도, 늦은 30세에 낳았다면 1569년생 정도 되므로, 충엄(1581년생)과 우엄(1584년생)의 자형(姊兄)임을 알 수 있다.

< 계속> 족보에 사위로 기록되어 있어야 할 義城人 東岡 金宇顒(1540-1603)이 과연 장포공의 사위가 맞는지 살펴볼 예정입니다.

숙간공 백동파 도정공지파 38세 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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