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36. 설파공 당진파 

 

 
설파공 득인(得仁) 묘
소재지 : 당진군 송산면 당산리 산59

중추부사 효렴(孝廉)의 장자로 세종 20년(1438)에 16세로 진사과에 등제하고 세종 23년 (1441)의 중광시 문과대과에 19세에 장원하고 한림원으로 출사하여 이조참의를 거처 성균관 대사간과 북평사를 지냈다 소인 현석규(玄碩奎)가 대사간에 올으기전  국사처리에 잘못이 많음에도 중신들이 말을 못하는때에 공은 상소로 극간하여 잘못을 탄핵하니 왕이 한때 그뜻을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이조판서 겸 예빈시제조(吏曹判書兼禮賓寺提調)로서 연회를 주관하여 빈객(賓客)을 접대하는데 검약(儉約)을 위주로 시행 한것을 현석규가 지난 원한으로 왕에 없는 죄를 있는것처럼 고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 호조판서를 면직케 한 것이다. 면천현에 이르러 당진 오도(鰲島)에 무덤을 짓고 집터를 금의리(錦衣里)에 마련했다 그러나 2년도 안되어 성종은 공의 인품과 능력을 인정 다시 공조판서로 소명하여 황해도 감찰사까지 맡겼으나 부임못하고 72세에 운명했다 이때 조야에선 선정 신도비를 세웠다.


봉사 김표 (奉事 金彪)

 우승지 희정(希汀)의 2자로  무과에 급제하고 선조 원년(1568)에 선전관으로 출사하여 훈련원봉사를 거처 어영천총겸 준천사도청(御營千總兼濬川司都廳)을 지내고 1585년에 순명하니 예조판서겸양현고직장으로 증직되었다 그러나 공에 자손이 없어 부인 안씨가 전재산을 들여 조상의 묘소에 비석과 비문에 행직과 증직 그리고 제답과 노비의 수와 이름끼지 새겨 조부묘소 왼편에 세웠다 광해2년  사림의 추천 으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에 실리고 열녀정려를 받아 증조묘하에 세워 효렬을 기리고 공의 형 호(虎)의 2자 우추(遇秋)를 입양하여  승종하였다.

  

삼강행실도

김표(金彪)의 처 안씨(安氏)

안씨는 면천군 사람이이니 봉사 김표의 안애 로 효행이 탁월하여 시어버이 섬김에 예를 다하더니 죽음에 애통에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안니하며 제사 받들기에 극진한 성을 다하고 지 아비가 죽으니 머기를 베여 바치고 애통하며 삼년간 봉발하고 마옷이 혀여지니 백의를 입고 조석으로 전하는 예를 가추고 현모의 병환이 위독할때 똥을 맛보더라 상이 정문하였다

 

영모제

소재지:당진군 당진읍 원당리

  성주산이 홀연이 솟아 그 맥낙이 남서로 굽이굽이 청룡을 이루고 서북으로 그 형세가 굴곡을 이루며 백호를 형성한 천혜지지를 이루었다 이곳에 설파공 휘 득인의 후예가 기반을 잡고 오백여년을 돈목한 종족애와 후덕한 인정으로 생활하여 면면이 이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십육세되시는 통정공 휘 응추선조를 비롯하여 세세로 계장하여 이제까지 후손들이 향사를 봉사해왔다. 그러나 세속이 변천하여 위선심이 해이하여지고 효친사상도 쇠퇴하여가니 매년 세향행사를 제대로 봉행하기 극난하게 되었다. 그래서 뜻있는 후손들이 모여 영원히 위선행사와 종친단합이 지속보존할 수 있는 대책을 강구하지 않이할 수 없게 되었다. 종인들이 협의하여 재실건축을 결의하고 즉시 추진위원을 조성하고 장엄한 재실을 준공하고 영모제라 명명하니 우리 종중의 자랑이며 후손들도 이러한 위선심을 계승하여 천추 만대토록 향화가 계속되며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숙원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