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14. 송오공파

 

충절공 김사혁 상원수 전적비

 소재지 : 천안시 흙산성 정상

총랑 광갑(光甲)의 장자로 고려의 무신.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이 개경을 침공하자 이를 수복한 공으로 1363년에 이등공신이 되었다. 우왕 2년(1376)에 공주목사로 있을때 공주에 침입한 왜구를 정현(鼎峴)에서 맞아 싸우다가 패하였으나 그뒤 여러차례에 걸처 충청도와 전라도에 침입한 왜구를 무찔러 전공을 세웠다 1380년에 전리판서(典理判書)로서 양광도도순문사(楊廣道都巡問使)가 되었으며 이어 양광도 원수(元帥)가 되어 부여와  계룡산 일대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하였다.1385년에는 양광도 상원수가 되어 축산도(丑山島)에 침입한 왜구를 격파하고 지문하사(知門下事)가 되었다. 호는 충절 이다

  

송오공 김승로 묘

 소재지 : 연기군 전동면 청남리 부노곡

충절공 사혁(斯革)의 장자로 포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내직으로 출사하여 사헌형부외 전주현(司憲刑部外典州縣)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 하면서 정권을 잡자 운곡 원천척(耘谷 元天錫)등 동지들과 송악강사(松岳講舍)에 들어가 조복을 찢어버리고 통곡하며 벽촌에 음거하였다 후에 태종이 공의 청절을 알고 대사헌에 제수하였으나 끝내 불사하고 98세에 세상을 떠났다 세종조에 숭록대부 우의정에 추증하였다

  

영모제(永慕齊) 의사 충정공

소재지 : 진양군 정촌면 예하리

헌(헌) 의사 충경공

참봉 언박(彦博)의 3자로 진사과에 등제하였으나 관직에 출사하지않고 선조 26년(1592)에 임난에서 관군이 도처에서 패배할때 공이 문중의 노비와 의병300여명을 모집하여 의병종사관으로 금산에서 왜적과 격전하다 708명의 의병과 전사하여 700의총에 묻히었다  충경의 시호를 받고 경남 진양군 정촌면 예하리에 공의 충절를 영모하여 후손이 영사제(永思齊)와 순의비(殉義碑)를 건립 매년 청명일에  봉향하고 있다

  

충열효자각(忠烈孝子閣)

소자지 : 충남 연기군 전의면 고등리 내동

충렬(忠烈) 신열(信烈)형제 효자

충렬(忠烈)공과 신렬(信烈)공 형제는 11살 9살의 어린나이에 부친이 졸하니 시묘의 정성이 어른에 미치고 노구인 충렬(忠烈)은 부친의 60주기 제사날 다시 시묘를 여막에서 시작하니 세인들이 크게 놀랐다 나라에서 정려를 받고  숙종대왕이 온양에 행차하였다가 이소식을 듣고 칭송하고 표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