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8. 평의공파

                            숭덕제

숭덕제(崇德齊) 평의공 김지(金지)

 소재지 : 강릉시 대전동

지(지) 도평의산원우곡현령 홍원현감겸 병마단련판관지군사 탄지(坦之)의 3자로 우왕 13년(1387) 비서성 교서랑으로 출사하였다. 공양왕 2년 (1390)에 국가최고 의결기관인 도평의산원으로 재임중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따라 개혁세력이 등장하고, 배원숭명(排元崇明)정책으로 바뀌었다. 따라서 개혁등 사회 전반에 변혁의 바람이 일게되고 기득권층의 협조가 강압적으로 이루어지게되어 공은 문중의 안위가 본인에 있음을 알고 장형 헌(軒)과 차형 예(예)와 의론하여 13대조 내사령 예(乂)때부터 내려온 사성(賜性)왕씨(王氏)를 강릉김씨로 복성하였다공은 그로부터 지방관인 홍원현감등을 거처 강릉으로 귀향하여 강릉향교 중건을 주도하여 유학진흥에 심혈을 기우리고 아들 5형제 모두 문무대과에 급제하였다.  공은 평의공파조 이다

 

세운제 (灑雲齊) 감찰공 자흠(子欽)

소재지 : 동해시 세운제

현령 지(지)의 5자로 세종 8년(1426)에 사마시에 등과 성균관 전적l과 병조정랑 및 사헌부감찰(정6품)을 거처 청하현감으m로 외직에 나가 선정을 배풀고 삼척에 정착하였다

 

효자리비 김덕장

소재지 : 강릉시 옥천동

조봉대부 창수(昌壽)의 자, 효를 기려 정려를 받고 당호를 효우당(孝友堂)마을 이름을 효자리로 부르게 하였다. 시묘에 하루는 원인 모를 큰불이 나 산야가 타오르자 통곡하며 하며 애원하니 바람이 바뀌고 폭우가 쏘다저 자연 소화되니 효성에 감동한 원인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