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절 부승공파

 

제32절 부승공파

  일로공 양남(揚南)의 3자인 부(부)는 부승(府丞)을 지내고 장자 인원(仁元)은 무과에 급제하여 만호를 지냈으며 후손은 고양파가 되고 2자인 의형(義亨)은 부정과 김해부사를 지내고 장자 준(浚)이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후손은 풍동파가 되었다. 2자 항(沆)의 후손은 포천파로 3자인 진사 환(渙)의 장자 윤문(允文)은 부사를 지내고 후손이 양주 고능과 광적파가 되었고 2자인 윤무(允武)의 후손은 강릉 선연과 양동파가 되고 부사 의형(義亨)의 4자인 도(渡)는 장령을 지냈다. 장자 윤헌(允憲)의 후손은 금성면에, 2자 윤학(允學)의 후손은 통천에 세거하며 부승공파라 한다

1. 부승공 고양파

   양남(揚南)의 3자인 부(부)는 부승을 지내고 장자 인원(仁元)은 무과급제하고 만호를 역임하였으며 후손은 부승공 고양파가 되었다. 김해부사 의형(義亨)의 장자 준(浚)은 주부와 직장을 거처 예조좌랑을 지내고 후손은 고양군 풍동에 세거하고 부승공 고양파라 한다

2. 부승공 포천파

  부승공 부(부)의 2자인 의형(義亨)은 김해부사를 지내고 공의 2자인 항(沆)의 자는 윤성(允成)으로 습독을 지냈으며 화진면 마탄리에서 포천군 청산면 덕둔리에 정착 하여 부승공 포천파라 한다

3. 부승공 백석파

  부승공 부(부)의 2자 의형(義亨)은 김해부사를 역임하고 공의 3자인 진사 환(渙)의 장자 윤문(允文)은 부사를 역임하였으며 손자 자(자)는 홍문관 제학과 한성판윤을 역임하고 장자 원립(元立)은 예조참판을 지냈다. 마전현 화진면(연천군)에서 살던 7세손 성원(聲遠)은 양주군 백석면 고능과 광적.불곡에 정착하여 후손이 부승공 백석파라 한다

4. 부승공 선연.양동.파

  부승공 부(부)공의 2자 의형(義亨)은 봉사시 첨정과 부정을 지내고 외직으로 김해부사를 역임하였으며3자 진사 환(渙)의 2자인 윤무(允武)의 장자 의(의)는 황해도사를 지내고 장자인 천일(千鎰)은 상원군수를, 자 연(璉)은 칠원 현감을 지냈는데 6세손 인로(仁老)가 강릉 선연으로 이거 후손이 선연파가 되고 인로(仁老)의 현손 경(涇)공의 3자 인성(仁成)이 양평군 양동면 금왕리에 세거하며 양동파라 한다

5. 부승공 통천.금성파

  김해부사 의형(義亨)의 4자인 도(渡)는 진사로 장령을 지내고 강원도 통천군 화원면 죽대리에 정착하고 장자 윤헌(允憲)의 증손인 응길(應吉)은 강원도 금성군 동면 하치리에 정착 후손이 금성파라 하며 도(渡)의 2자 윤학(允學)의 후손은 통천파라 한다

6. 부승공 의성파

  부승공 부(부)의 3자 예정(禮貞)은 오위부사맹으로 출사 호군과 대호군을 거처 내금위장(內禁衛將)을 지내고 증손 태종(泰宗)은 안동군 춘양면에 정착하다 후손이 예천 상주 중동면을 거처 성대(聲大)공이 의성군 단북면 비안리에 정착 후손이 의성파라 한다

7. 진사공 양산파

  일로공 양남(揚南)의 3자인 계강(啓江)은 진사과에 등제하고 단종의 손위로 출사않고 절의를 지키고 자 석(碩)의 후손은 양산군 물금에 정착하여 진사공 양산파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