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절 참봉공 유천파

 

제7절 참봉공 유천파

  부정공 경생(慶生)의 증손이며 훈도 지(지)의 차자인 궐석(闕石)은 참봉를 지내고 장자와 3자의 후손은 무전하며 차자 현준(賢俊)의 후손은 강릉 유천과 두산동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둘째 현손(厚新)의 후손은 금광. 임곡에 세거하며 둘째 증손 언기(彦器)의 후손은 봉평과 망상에 세거하며 둘째 손자 서용(瑞龍)은 직장을 지내고 양양에 세거하였다 후손들은 참봉공 유천파라 하고 셋째손자 득용(得龍)의 후손은 함경도 부령파라 한다

1. 참봉공 유천파
  정공 경생(慶生)의 증손 훈도 지(지)의 차자인 궐석(闕石)은 참봉를 지내고 손자, 참봉 응인(應仁) 이 3자이다 장자 덕룡(德龍)은 무부장을 지내어 후손은 유천과 봉평.망상에 세거하고, 차자 서용(瑞龍)이 직장을 지내고 후손은 양양에 세거하여 참봉공 유천파라 한다 3자 득룡(得龍)은 직장을 지내고 부령파가 되었다. 

2. 직장공 부령파
  참봉 응인(應仁)의 3자 득룡(得龍)은 진사과에 등제하여 직장으로 재임중 임진왜란이 이러나 왕자를 시종(侍從)하여 함경도 회령까지 갔으나 왕자가 피체(被逮)되자 정문부(鄭文孚)와 의병을 일으켜 종성,길주등지에서 왜군을 격파하는 전공을 세우고 그곳에 정착하여 후손이 함경도 부령군 청암면 창평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여 부령파라한다. 서기1926년도에 세보 6권을 발간한 사본이 서울종친회에 보존되고 있다 입북조 직장 득용(得龍)의 5세손 전(銓)은 선조 임란공신으로 순조조 병진년에 청암사에 배향하였다 철종조 임술년에는 통정대부 호조참의로 증직되고 숭열서원에 사액 배향되었으며 공의 장자 현문(顯門)의 후손은 청진포항 .청암 목음.청암 봉회동에 살면서 부령군 청암파라하고 5세 차손 감(鑑)의 4자 응문(應門)은 임란에 참전 공훈하여 병절교위로 증직되고 후손은 종성군 명간동면 어응촌에 세거하였다
  입북조 득룡(得龍)의 6세손 길문(吉門)은 참봉을 지냈고 후손이 용성면 근동 사봉과 종성군 주북면 달구미에 세거하였다

3. 군기정공 적은파
  
부정공 경생(慶生)의 증손 지(지)의 3자, 균석(勻石)의 손자인 효온(孝溫)은 군기정을 지내고 후손이 양양읍 적은을 중심으로 세거하여 군기정공 적은파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