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절 효자공 우계파 (갈매)

 

제8절 효자공 우계파 (갈매)

  시조 명주군왕의 5세인 영길(英吉)의 장자 선희(善希)대광(大匡)의 4자 우(祐)가 태사국 령과오부(五部)의 사(使)를 지내고 명주 우계현에 귀향하여 후손은 대대로 우계현의 호장을 세습하면서 지방을 다스려 오다가 고려 고종45년(1258)에 몽고 병란을 만나 시조의 16세손 김종련(金宗鍊)공 내외가 몽고병에 항거하다 피포되었다. 원나라에 간지 15년만에 그의 장자 전(전)은 원나라에 입국하여 넓은 지역을 탐방하던중 서림백호의 천노가(天老家)에서 노비생활을 하는 것을 발견 백금 55양의 거금의 몸값을 주인에 지불하고 모친을 모시고 귀국하였다. 그후 원나라 세조왕이 이소식을 듣고 천하대효라 찬사를 하였고 또한 고려 조정에서도 천하대효라 칭송하여 효자 정려(旌閭)를 내렸다 효자 전(전)은 2자를 두었는에 장자 영수(永壽)와 차자 장수(長壽)등이 국가에 각각 공훈을 세워 후손이 명주 우계땅에 세거하다가 9세손인 태인(泰仁)은 현능(顯陵)참봉으로 출사하여 양주군 구리면 갈매리에 정착세거하였다.그리고 선조의 발상지의 지명을 따라 효자공 우계파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