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절 평의공 감찰공파

 

제7절 평의공 감찰공파

  평의공 지(지)의 5자인 자현(子鉉)은 세종 갑오에 사마시에 등제하여 이천훈도로 재임중(1447)에 다시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좌랑을 거처 사헌부감찰과 강릉교수를 역임하고 동해시 송정지역 용정에 우거하다 여운리로 다시 이거하여 후손이 동해시 삼척을 중심으로 세거하였기에 평의공 감찰공파라 하고 공이 육3자로 장자 숙형(叔衡)의 후손들도 여운파가 되고 2자 보형(保衡)의 후손은 이동파.용정파.교항파.평창파가 되고 3자 이형(以衡)의 후손은 무전한다.

1. 감찰공 여운파(삼척)

  평의공 지(지)의 5자 자현(子鉉)은 사헌부감찰를 역임하고 장자인 숙형(叔衡)은 충순위 교위를 지냈으며 동해시 여운리에 세거하였다. 3자중 장자 효석(孝錫)의 후손은 여운파가 되고 2자 효사(孝賜)의 후손은 하장면 조탄리 하장파가 되었으며 3자인 효뢰(孝賚)는 참봉을 지내고 동해시 북삼동 니로리에 세거하여 참봉공 니노파라 하였ㄱ다. 참봉 효뢰(孝賚)의 장자 한경(漢卿)의 장자 언식(彦軾)의 후손은 니로파, 차자 언철(彦轍)의 후손은 교곡파, 3자 언진(彦軫)은 참봉을 지내고 후손은 여운파라 한다 

1) 감찰공 니동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이며 충순위 보형(保衡)의 장손 위(瑋)는 참봉을 지냈고 5자중 장자 은보(殷輔)는 첨지사를 지내고 후손이 동해시 이도를 중심으로 세거하여 감찰공 이동파라 한다 전 국회부회장 진만이 있다

2) 감찰공 맹방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이며 충순위 보형(保衡)의 장손 참봉 위(瑋)의 4자인 은철(殷哲)은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를 지내고 하맹방에 정착하여 2자를 두었는데 장자 국인(國仁)의 후손은 맹방파가 되고 2자인 국의(國義)는 홍천훈도를 지내고 그의 2자인 시각(是珏)은 율봉찰방을 지냈으며 후손이 봉화군 소천면 대현리와 맹방을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4자인 여각(汝珏)은 중추부사를 지냈고 공의 장자 제현(齊賢)은 가선대부, 5자인 세광(世光)의 후손은 울진군 울진읍 화성리에 세거하여 후손들은 맹방파라 한다

3) 감찰공 용정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로 보형(保衡)의 장자 삼준(三俊)은 충순위 교위를 지냈고 장자 위(瑋)의 후손은 이동파가 되었으며 차자 황(璜)은 순능참봉을 지냈고 장인(丈人)의 권유로 동해시 용정동으로 이거 후손은 감찰공 용정파라고 한다 황(璜)의 2자 인복(仁福)은 장예원사평(掌隸院司評)을 지냈고 후손은 송정,용정,도경, 등봉에 세거하고 인복(仁福)의 3자 득건(得健)은 군자감정(軍資監正)을 지냈고 황(璜)의3자 인지(仁址)는 봉사를 지냈고 2자 경건(景健)은 사마시에 등제하고 후손은 사마공 광동종이라하며 황(璜)의 4자인 인록(仁祿)은 참봉을 지냈고 후손이 참봉공 평창파라 한다

4) 감찰공 지저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손자로 삼준(三俊)의 3자 장(璋)은 참봉을 지냈고 동해시 용정동 지저(못필)를 중심으로 세거하며 참봉공의 장자 연(鍊)은 영능참봉(英陵參奉)을 지냈고 4자중 2자인 일상(日祥)의 후손은 대구(大口),미노(未老).용정동준(龍井桐准)에 살며 4자인 두상(斗祥)은 교수와 청풍군수를 역임하여 후손은 효가종(孝街宗)이라 한다

5) 감찰공 교항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손자로 삼준(三俊)의 4자 계생(繼生)은 사정(司正)을 지내고 삼척 근덕면 맹방의 중심지 교항(다리목)에 분가하였다. 공의 2자 희록(希祿) 증손 사봉(泗鳳)은 찰방을 역임하고 후손은 교항파라 한다.

6) 감찰공 사정공파

  감찰공 자현(子鉉)의 2자인 보형(保衡)의 2자 삼로(三老)는 사정(司正)을 지내고 후손이 삼척 정선을 중심으로 세거하여 감찰공 사정공 눌구파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