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절 평의공 회정공파

 

제5절 평의공 회정공파

  평의공 지(지)의 3자인 호조참의. 자흠(子欽)호 회정.(號 檜亭)은 세종조에 안변훈도로 재임. 세종(1444)는 문과에 급제, 승문원(承文院)박사 덕산현감을 거처 호조참의를 지내고, 강동면 상시동에 정착하여 슬하에 4형제를 두어 장자 보연(普淵)의 후손은 강동면 모전 백교.상시동 하평.조항.재동 삼척 신당 모전파와 사직공파로 되었고 차자 광연(廣淵)은 사정공 우암파가 되었으며 3자 대연(大淵)은 생원으로 사천면 구라미 금광리와 지변에 세거하고 4자 영연(永淵)은 장사랑을 지내고 4세손인 선(瑄)이 의금부 판사를 역임하고 청량 여찬 풍덕에서 세거하였으며 자흠(子欽)은 호조참를 지냈고 호를 따라 후손이 평의공 회정공파라 한다. 

1. 회정공 가평파

  회정공 자흠(子欽)의 장증손 광국(光國)은 제천현감을 지내고 3형제를 두어 장자 소운(紹雲)은 순능(順陵)참봉을 지내고 장자 여열(汝說)의 후손은 무전하며 차자 여망(汝望)의 장자 득문(得文)의 후손은 명주군 연곡면 가평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참봉 소운(紹雲)의 차자 여윤(汝尹)의 후손은 명주군 강동면 하시동 조항에 세거하며 참봉 소운(紹雲)의 4자 여익(汝益)의 손자 시우(時遇)는 한성판관으로 전임하면서 양주 신촌에 거주하였다. 후손 대흥(大興)은 양산으로 이거하였고 소운(紹雲)의 5자인 여괄(汝适)의 후손이 구정면 재동으로 이거하여 세거하였기에 평의공 제동파라 한다

2. 회정공 신당파

  참의공 자흠(子欽)의 증손인 광국(光國)이 제천현감을 지내고 3자인 승운(繩雲)은 강원도찰방(정6품)으로 절충장군 행용양위 부호군(종4품) 및 중추부 첨지사(정3품)를 지냈으며 강동면 모전리에 우거하였다. 장자 여계(汝契)는 제용감봉사에 등제되어 중추부 첨지사에 이르고 3자중 장자 양신(養身)은 문과에 급제 부승지를 역임하였는데 후손이 무전하며 차자 양성(養誠)은 도찰방과 중추부 동지사를 지내고 동해시 북평동 신당리에 이거하여 신당파라하엿다. 3자 양정(養正)은 봉직랑을 역임하고 부모의 봉양과 시묘로 천하 대효로 선양정려(旌閭)되었으며 이를 모전파라 한다 (진선 강원지사)

 

3. 회정공 모전파

  봉직랑 양정(養正)의 장자 계(계)는 증광생원으로 슬하에 8남을 두어 모전.백교. 하시동.상시동에 세거하였다 

4. 회정공 달성파

  참의공 자흠(子欽)의 장자 보연(普淵)의 2자인 치남(致南)은 의흥위 사직을 역임하고 후손은 달성군 수성 신천에 세거하였고 사직공 치남(致南)의 5세손인 성실(聖實)의 차자 태립(泰立)은 후손이 경북 청도군 소천지방으로 이거하였다가 양산으로 다시 이거 세거하였고 3자 흥립(興立)은 경북 영덕군 도경에 세거하였다. 이를 달성파라 한다

5. 회정공 우암파

  참의공 자흠(子欽)의 2자인 광연(廣淵)은 무과시에 등제되어 의흥부 사직(정7품)을 지냈고 증손응청(應淸)은 양양군 선양면 우암리에 정착하여 우암파라 한다

6. 회정공 횡성파 (사천구라미)

  참의공 자흠(子欽) 회정공의 3자인 대연(大淵)은 생원하고 장자 인흡(仁洽)의 손자 득수(得壽)의 후손은 명주군 사천면 구라미와 횡성에 서거하며 사천구라미파라 하고, 동생 득귀(得貴)의 후손은 명주군 성산면 어흘리에 거주하여 성산파라 한다. 

7. 회정공 성산파

  참의공 자흠(子欽)의 3자인 대연(大淵)생원의 자이며 경운(慶雲)의 3자인 득귀(得貴)의 손자 효립(孝立)은 명주군 성산면 어흘리에 세거하며 성산파라 한다 

8. 회정공 금광파

  참의공 자흠(子欽)의 3자인 참봉 대연(大淵)의 2자 의흡(義洽)은 문장이 출중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않고 손자 서구(瑞龜)는 간성훈도를 지냈고 2자인 자광(自光)은 봉상시(奉常寺) 첨정(僉正)을 역임하고 명주군 구정면 금광리에 정착 금광파라고 한다 

9. 회정공 지변파

   참의공 자흠(子欽)의 3자인 대연(大淵)생원의 3자 예흡(禮洽)은 생원에 등제하여 예안현감을 지냈고 장손자 응담(應淡)과 둘째손자 응함(應涵)은 무전하며 셋째손자 응의(應椅)는 무과시에 등제하여 사직을 지내고 3자인 수학(壽鶴)은 기자능참봉(箕子陵參奉)을 지냈으며고 장자 상종(尙琮)은 오대산사고(史庫) 참봉을 지냈고 후손은 양양 상도문에 세거하였다. 2자 상근(尙謹)은 중추부 동지사를 지냈고 후손은 경포 지변리를 중심으로 세거하고 상근(尙謹)의 2자인 시백(時伯)의 후손은 지변. 사천 하창동에 세거하였기에 지변파라 한다

10. 회정공 판사공 청량파

  참의공 자흠(子欽) 회정공의 4자이며 장사랑 영연(永淵)의 장자인 종식(宗湜)은 문과에 응시하였으나 낙제하고 강동면 시동에 우거하다가 손자 선(瑄)이 의금부판사를 지냈기에 청량리에 세거하였고 영연(永淵)의 2자인 종한(宗瀚)의 후손은 구정면 여찬리와 옥계면 낙풍리에 세거하고 3자 종회(宗澮)의 후손은 옥계면 산계에 세거하여 청량파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