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평의공 우후공파

 

제4절 평의공 우후공파

  평의공 지(지)의 2자인 자장(子장)은 무과에 급제하여 어모장군(정3품)이 됨. 강원절도사 우후를 역임후 경포호변 초당에 정착하엿음. 장자 곤(坤)은 생원과에 등제하여 전성서주부를 지냈으며 그의 증손인 창수(昌壽)는 증 조봉대부 군자감정에 오르고, 3자중 장자 덕장(德璋)의 후손은 우후공 초당파가 되고 2자인 덕림(德琳)의 후손은 양양 강현과 사천 석구에 세거하였으며 3자 덕규(德珪)의 후손은 고성에 세거하고 곤(坤)의 자 세공(世公)의 제 세경(世卿)은 참봉으로 후손이 우후공 참봉공파라 한다

1. 우후공 호명 초당파

  강원절도사 자장(子장)의 자 곤(坤)은 전성서 주부를 지내고 장자 세공(世公)은 생원에 오르고 자 준손(俊孫)은 선무랑과 공릉 참봉을 지냈다 장자 창수(昌壽)의 장자 덕장(德璋)은 평강훈도를 지내어 후에 호조참의로 증직되고, 장자 충민(忠敏)은 중림도 찰방(重林道察訪)을 역임하였다. 창수(昌壽)는 부친상으로 여묘(廬墓)할때 밤마다 옆에서 대호가 호위하였으며 산화시는 꼬리에 물을 무쳐 묘소의 여막을 보호하였다 하며 진화를 주문으로써 하늘에 고하니 자연히 진화가 되어 고을 사람들은 효성이 하늘에 다았다고 하였다 시묘후 대호(大虎)가 대청마루밑에 새끼를 치며 집을 지켜주었다 한다 중종이 효자정려를 내리고 지명을 효자리라 하였으며 사호한 비(碑)는 문화재로 관리보존하고 있다 후손들이 대호가 집을 지켜주었다 하여 호명파로 칭호하게 되었다

1) 우후공 초당

  우후공 자장(子장)의 6세손인 훈도 덕장(德璋)의 3자 충각(忠慤)은 도원찰방(挑源察訪)과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를 지내고 장자 지안(志顔)은 대과에 급제, 인제현감(麟蹄縣監)과 한성서윤(漢城庶尹)을 지냈으며 후손은 초당에 세거하였다

2) 우후공 양양

  우후공 자장(子장)의 5세손인 첨정(僉正) 창수(昌壽)의 2자 덕림(德琳)과 장자 충갑(忠甲)의 후손은 양양 강현에 세거하고 차자 충일(忠一)의 후손도 사천 석구을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3) 우후공 학포 용호

  우후공 자장(子장)의 5세손인 창수(昌壽)의 3자 덕규(德珪)는 예조정랑(禮曹正郞)을 지내고 3자중 장자 충간(忠侃)의 후손은 국토분단으로 무전하고 2자인 충보(忠譜)의 후손은 양양군 선양면 학포리에 세거하고 3자인 충산(忠山)은 수의위부위(修義尉副尉)를 지냈는데 후손은 양양군 강현면 용호리에 세거하였다

4) 우후공 연곡

  첨정(僉正)이고 효자인 창수(昌壽)공의 3자로 예조정랑(禮曹正郞) 덕규(德珪)의 2자인 충근(忠謹)의 장자인 지필(志苾)의 후손은 학포, 2자인 지렴(志廉)의 후손은 연곡삼산에 세거하였다

5) 우후공 고성

  우후공 자장(子장)의 손자로 세경(世卿)의 장자인 준손(俊孫)의 후손은 호명에 세거하고 차자 언손(彦孫)의 후손은 고성군과 통천군에 세거하였다

6) 우후공 참봉공

  우후공 자장(子장)의 자 곤(坤)의 3자인 세경(世卿)은 참봉을 지내고 손자 대성(大成)의 후손은 현남면 인구리에 세거하고 차손인 대승(大升)의 후손은 횡성 청일면에 세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