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절 평의공파

 

제2절 평의공파

  시조 명주군왕(주원)의 현손 4형제중 장자 영진(英珍)의 후손은 청풍파 영월파 부정공파 옥가파등의 상조이고, 차자 영길(英吉)공의 후손이 군사공 옥계파와 평의공파의 상조이며, 영길(英吉)은 태사(太師)로 만석군의 대부호였고 손자 예(乂)가 고려 삼한벽상개국공신 문하시중내사령 태전(太傳)이며 국구(國舅)가 되고 왕씨로 사성을 받았다. 고려왕조의 중신으로 충성을다하고 고려말 이성계가 조선조를 창건하자 이때 지(지)공이 당시 국가최고의정기구인 도평의사(都評議司)에 재직중 장형인 헌(軒)과 중형 예(예)을 회유하여 강릉김씨로 복성하고 강릉 경호(鏡湖)지역에 낙향 정착하였음 지(지)의 아들 5형제은 문과에 급제하여 장자 자갱(子갱)은 형조참의를 지내고 후손은 참의공파가 되고 차자 자장(子장)은 강원절도사 우후를 역임하여 우후공파 3자 자흠(子欽)은 호 가 회정이고 호조참의를 지냈고 후손이 회정공파 4자 자종(子종)은 한성좌윤과 삼척수군절제사를 지내고 첨사공파, 5자 자현(子鉉)은 사헌부감찰을 역임하여 감찰공파등으로 분계했다  

1. 참의공 풍덕파

  평의공 지(지)의 장자 자갱(子갱)은 조선조 태종11년(1411)에 생원과에 오르고 태종14년는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참의와 중추원사을 역임한후 경기도 양주에 정착하였으며 3자인 장자 백형(伯衡)은 예종조에 문과에 급제, 부사(府事)에 이르고 그의 자 여(여)는 장사랑을 지내고 중종조에는 경기도 풍덕군 남면(현 개풍군 임한면 사동리)에 정착하고 아들 한영(漢榮)이 승훈랑전적을 지내고 후손은 참의공 풍덕파라 한다. 참의공 자갱(子갱)의 7세손 해(瀣)의 차자 방익(邦익)의 후손은 개풍군 임한면 사동 대촌에 세거하고 3자 방륜(邦륜)의 후손은 사동 양현에, 4자 방감(邦鑑)의 후손은 송라에, 참의공의 6세 정서(廷瑞)의 2자 흡(흡)의 후손은 장단에 세거하였다. 참봉 옥(沃)의 2자 정환(廷環)이 개풍군 임한면 사동 석정에 세거하며 평의공파 참의공 풍덕파라 하였으여 다만 세거지가 이북이기에 남한에 산재한 종족을 규합, 숭조단을 설치 종중화합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