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김씨 시조와 득관유래

1.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주원(周元)은 어떻게 강릉에 오셨는가?

  시조 명주군왕은 신라김씨의 시조 알지(閼智) 대보공의 21세손으로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사없이 서기785년에 승하하여 당시 시중겸 병부령(지금의 국무총리겸 국방장관)인 주원(周元)공을 왕위에 오르도록 군신회의에서 결의하였으나 주원공의 저택이 경도의 북쪽 20리에 있었는데 때마침 큰비가 내려 냇물이 넘쳐 건너지 못하자 인군(人君)자리는 잠시도 비울 수 없다하고 당시 상대등인 김경신(金敬信)공이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이가 신라38대 원성왕이시다

  주원(周元)공이 비가 개인후 임상(臨喪)차 단기(單騎)로 입궁(入宮)하니 왕위에 오른 김경신(金敬信)이 주원(周元)공에 왕위(王位)에 오르기를 권(勸)하니 주원공은 인군대위(人君大位)는 천명(天命)이라 하며 사양하고 어머니의 고향인 명주로 퇴거하였다. 그로부터 2년후 원성왕은 왕위를 양보한 덕을 생각하여 명주(강릉)를 중심으로 강릉.울진.평해.삼척등 동해안 일대를 분할하여 다스리게하고 명주군왕으로 봉하였다 (동국여지승람) 이때부터 명주도성을 중심으로 세습통치 하면서 자손이 번성하여 강릉김씨로 득관하고 명문거족의 발상지가 되었다.

    

 

* 시조 주원(명주군왕)은 슬하에 3형제로 장자 종기(宗基)공의 손자 양(陽)의 자손이 무전하고 차자 헌창(憲昌)의 부자 (父子)는 반란으로 무후(無后)하고 3자인 신(身)이 유일한 강릉김씨로  증손 3형제에세 강릉김씨의 최초 분파가 되었다.

 

 

명주군왕릉

 능향전

 

 

명주군왕 신도비각 삼왕동

숭의제 명주군왕 재실
소재지: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253-1

 

 

 

2. 장자 종기(宗基) 시중(국무총리)

  시조 주원할아버지의 장자로 원성왕 6년에(790)에 이찬(장관)에서 시중(국무총리)에 오르고 공이 벽골제(碧骨提: 지금의 김제)평야에 제방을 만들어 수리시설을 하고 농경정책에 기여하여 김씨가 제방을 쌓았다 하여 김제(金提)로 불여지고 있다 (참고:東史綱目.文獻備考.三國遺事)

 

  공의 아들 정여(貞茹)와 장여(璋茹) 형제가 시중을 지내고 손자 양 (陽)은 정여의 아들로 헌덕왕3년(826)에 고성태수 832 무주(공주)도독으로 전임하고 흥덕왕11년(836)에 왕이 후사없이 승하하니 흥덕왕의 종제 균정(均貞)과 당질 제융(悌隆)이 서로 왕이 되고자하니 양(陽)은 균정을 옹립하다 실패하자 당숙 자사(紫絲)와 같이 산중(山中)에 은거중 민혜왕이 희강왕을 시해하고 즉위함으로 장보고와 모의하고 공이 동평장군이 되어 민혜왕의 관군을 격파하고 균정의 자 우징을 신문왕으로 옹립하였으나 즉위 3개월만에 병사하여 그의 장자 경응이 문성왕으로 즉위하여 김양에 록하고 문성왕9년(847)에 시중겸 병부령을 제수받고 나이 50에 후사없이 돌아가 경주 태종무열왕능 아래에 장사하였다.

 

 

 

3. 차자 헌창(憲昌) 시중(侍中)

  시조 주원할아버지의 차자로 헌덕왕5년(813)에 이찬(장관)으로 있다가 무진주 도독으로 전임되고 다음해에 시중(侍中:국무총리)에 오르고 왕8년에 청주도독을 거처 공주도독으로 재임중에 조정에는 귀족간에 왕권쟁탈전이 계속되고 중앙통제력이 약화되고 지방에서는 기근과 도적이 늘어나니 선대에서 이룩한 통일국가 기반이 흔들려 자신이 왕위에 못오를리 없다고 생각하여 국호를 장안이라 하고 년호를 경운이라 하며 거사를 도모하니 그세력이 충청도.전라도.경상도등에서 호응함으로 그 여세로 경도(京都)를 공략하였으나 관군에 패하고 공주도성에 돌아와 자결하였다.
  그의 아들 범문도 헌덕왕17년에 북한산주에서 거병하다 실패하여 이 부자를 사기(史記)에는 난신 역적으로 기록되고 있다.

 

 

 

4 삼자 신(身) (憲忠公)

  강릉김씨는 전부 이 어른의 자손들이다 시조의 셋째 아들 신(身)공은 서기 804년에 한산군수 806년에 사찬에서 대아찬에 오르고 그해 8월에 당나라 헌종(憲宗)즉위식에 축하사절로 입당하여 원외위위경(員外衛尉卿)의 벼슬을 받고 807년에 파진찬 810년에 한산주 도독 그후 이찬(장관)에 오르고 814년에 시중(侍中)에 명하였으나 받지 아니하고 명주로 퇴거하였다

 

 

 

5 자사(紫絲) (大奈麻)

  신(身) 헌충공의 아들로 헌덕왕11년(836)병부노(兵部弩)로 있을때 김양(金陽)과 함께 균정(均貞)을 왕을 세우려다 김명(金明)에 패하여 김양과 같이 피신하였다 이때 김명이 제융(悌隆)을 희강왕으로 옹립하고 자신이 상대등에 오르더니 왕3년에 희강왕을 궁중에서 죽이고 44대 민애왕(閔哀王)으로 즉위하니 김양이 군사를 모집하여 청해진 궁복의 도움을 받아 동평장군이 되고 자사(紫絲)공도 중동대감(中憧大監)이 되어 대구에서 관군을 토평하고 우징(佑徵)을 신무왕(神武王)으로 즉위 시키는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숭선태수 병부태사 무진주 태수와 대내마(大柰麻)를 역임하였다 

 

 

 

6 동정(東靖) 대내마

  동정(東靖)공은 47대 헌안왕 4년(860)에 집사성원외랑(執事省員外郞) 왕6년에 태산군태수(太山郡太守)와 한림랑태학감대사(翰林郞太學監大舍)와 대내마(大柰麻)을 지내시고 슬하에 4형재를 두었는데 장자英珍 차자 英吉 3자 英堅 4자 英喚으로 장자 영진(英珍)공의 후손이 판사공 청풍파.부정공파.옥가파 차자 영길(英吉)공의 후손이 평의공파. 3자 영견(英堅)공의 후손이 한림공파 4자 영환공의 후손은 전하여 지지 않음

  그러므로 동정(東靖)공의 아들 3형제에서 강릉김씨의 최초로 3파로 분파되었다.

 

 

 

7 파계도

 

시조

2세

3세

4세

5세

 

 

 

 

 

 

 

 

 

 

 

주원

周元

종기

宗基

 

 

 

 

 

 

 

 

 

 

 

 

 

 

 

헌창

憲昌

 

 

 

 

 

 

 

 

 

 

 

 

 

 

 

자사

紫絲

동정

東靖

영진

英珍

14세손 하림(夏林)공이 증 판서로 후손이 판서공 청풍파

12세손 장록(長祿)공이 영사(令史)를 역임하여 후손이 영사공 영월파

14세손 경생(慶生)공이 부정을 역임하여 후손이 부정공파

14세손 용수(龍壽)공이 지통주사(知通州事)를 역임하여 지사공(전적공)모안파

17세손 윤신(潤身)공이 목사를 지내고 호가 괴당으로 후손이 괴당공 옥가파

 

 

 

 

 

 

 

 

 

 

 

 

 

 

 

영길

英吉

15세손 예(예)공이 군사로 후손이 군사공 옥계파   

15세손 지(지)공이 평의공으로 평의공파 (일명 왕김파)

 

평의공파를 세분하면

군사공 옥계파

평의공파

참의공 부사공파

평의공 우후공파

평의공 회정공파

평의공 첨사공파

평의공 감찰공파

효자공 우계파

 

 

 

 

 

 

 

 

 

 

 

 

 

 

 

 

 

 

 

 

 

 

 

 

 

 

 

 

 

 

 

 

 

 

 

 

영견

英堅

 5세 원걸(元傑) 후손을 상서공 신리파

15세 보안(寶安)공의 후손을 상서공 횡성파

19세 경인(敬仁)공의 후손을 만호공 김포파

19세 경의(敬義)공의 후손을 지산군 김포파

19세 경예(敬禮)공의 후손이 첨사공파

15세 원구(元龜)공의 후손이 판사공 평창파 .만우파

19세 시습(時習)매월당 공의 후손이 청간공파

18세 일신(日新)충순공의 후손이 충순공 동래파

15세 한경(漢卿)부정공의 후손이 부정공 상주파

16세 승로(承露)송오공 후손이 송오공파

17세 덕숭(德崇)모암공 후손이 모암공파

15세 종혁(從革)판윤공 후손이 문의파

15세 원혁(元革)총랑공의 후손이 복구정파

16세 이남(以南)사윤공 후손이 사윤공 북청파

16세 윤남(允南)감무공의  파주파,    21세 행(行) 장포공 후손이 파주파

16세 양남(楊南)일노공 제천파, 숙간공 백동파, 부사공파, 좌랑공파, 제주공

                      능동파, 판윤공동두천파, 진사공포천파, 부승공파     

16세 종남(從南)감무공의 후손이 감무공 여주파

16세 자남(自南)직장공의 후손이 영해군파,동원군파,월봉공파.삼괴당공파

22세 광춘(光春)주부공의 후손이 안동파

16세 효생(孝生)판관공의 후손이 판관공 인제.양구파

17세 득인(得仁)설파공의 후손이 설파공 당진파

17세 득지(得智)판사의 후손이  익산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