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김씨 상조

 

1. 신라 김씨의 시조 알지(閼智)

  신라4대 석탈해왕(서기65년3월) 어느 날 금성(경주)서쪽에서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가 수상하여 왕이 호공을 시켜 알아본즉 금 빛나는 궤짝이 나무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밑에서 울고있어 갖어와 열어 본즉 그 안에 남아가 들어 있어 탈해왕이 기뻐하고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김씨로 하고 총명하다 하여 알지(閼智)로 이름하고 그 숲을 계림(鷄林)이라 하였다

탄생지 : 경주시 교동 (계림: 사적19호)
탄강석 :

* 가락국 김수로왕의 후예 가락(김해)김씨를 제외하고 김씨(신라김씨)는 알지 대보공의 후손임

 

 

 

 

22. 김씨 최초의 왕 미추왕 (신라13대왕)                                          

  미추왕은 대보공 알지의 7세손으로 11대 조비왕의 딸에 장가드니 왕이 아들이 없이 승하하여 그 뒤를 이어 12대를 조비왕의 동생 점해왕이 승계하여 오다 후사없어 미추왕이 13대왕으로 서기262년에 즉위하여 22년간 재위하고 14대 석유예왕,15대 기임왕,16대 흘해왕으로 석씨에 왕권이 3대가 이어졌다

미추왕릉

신라통치 박씨...231년....10왕
             석씨...173년.... 8왕
             김씨...587년....38왕

 

 

 

33, 신라 중앙집권을 완성한 냇물왕(신라17대왕)                                        

  내물왕은 신라16대 석흘해왕이 아들없이 승하하니 나라 사람들이 왕으로 추대하여 신라17대왕으로 서기 356년에 즉위하여 46년간 신라를 통치하였다 내물왕은 외교를 잘하여 고구려,백제와 친교를 맺고 자주 침범하는 왜적을 뛰어난 전략으로 물리치고 신라를 중흥시키고 중앙집권 체제를 이룩한 왕이며 이후부터 김씨가 계속 신라를 통치하였다 내물왕 뒤는 4촌인 실성왕이 뒤를이었고 그 뒤에는 내물왕의 장자 눌지왕 자비왕 소지왕으로 이어지다 차자 복호의 손자가 22대 지증왕으로 이었다

내물왕릉

 

 

 

44, 복호(卜好) 고구려에 인질

  내물왕이 승하하고 실성왕이 즉위하였는데 실성왕은 내물왕의 4촌으로 고구려와 화친 시 질자로 보낸 바 있어 이에 불만을 품고있다가 왕이 되니 내물왕의 둘째 아들 복호를 고구려에 3자 미사흠를 왜국에 인질로 보냈다 내물왕의 장자 눌지를 고구려로 보내고 특사를 보내어 죽이도록 음모하여 사실을 안 눌지가 귀국하여 실성왕을 죽이고 19대왕으로 즉위하여 충신으로 이름난 박제상을 시켜 고구려에 인질된 동생 복호를 구출하였고 일본에 인질된 미사흠은 여의치 않아 도망케 하고 박 제상은 왜 왕에 살해 되었다

 

 

 

55, 현존 신라 김씨의 공동 조상 지증왕(신라22대왕)

  지증왕은 김씨 7대왕으로 소지왕이 아들없이 승하하여 보령 64세에 서기 500년 11월에 즉위하였고 체격이 장대하고 담력이 뛰어난 거인이었다고 한다 사라 또는 사로.신라라고 부르는 국호를 신라로 정하였고 순장법을 폐지하고 농경법 제복법등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왕의 칭호가 거서간,차차웅,이사금.마립간등 구구하여 이때부터 왕으로 호칭토록하며 국방을 대비하여 12개성을 축조하고 지방행정권을 정비하여 주,군,현,제도로 개편하였으며 시장제도와 주화제도를 제정 시행토록 하였다.

*신라김씨의 혈통상 분계 설명

      지증왕 원종: 법흥왕...23대 왕으로 26년간 재위하였고 자손이 없음
                입종: 갈문왕...강릉김씨의 조상
                진종: 각   간...강릉김씨를 제외한 신라김씨의 조상

*지증왕의 장자 원종(原宗:법흥왕)은 자손이 없고 차자 입종(立宗)은 태종무열왕의 고조부이다. 삼자 진종(眞宗)의 8세손이 경신(敬信:원성왕)으로 경주김씨 광산김씨등 대부분의 신라김씨의 상조이다 그럼으로 신라김씨는 최초로 지증왕의 아들 두 형제에서 강릉김씨와 경주김씨로 분관(分貫)되었다

 

 

 

66. 입종(입종) (추봉 갈문왕)태종무열왕의 고조부 

  부친 지증왕이 서기 514년 7월에 승하하시어 형 원종(原宗) 법흥왕은 부친의 뒤를 이어 24대왕으로 즉위하니 입종(立宗)이 부친의 3년 시묘를 마치고 법흥왕3년에 이찬(伊찬) 6년에 예부령(禮部令)에 오르고 슬하에 3형제로 장자가 삼맥종(삼麥宗) 차자 백반(伯飯) 3자 국반(國飯) 인데 장자 삼맥종은 큰아버지 법흥왕의 뒤를 이어 신라24대 진흥왕으로 즉위하고 백반은 무후하고 국반의 따님 덕만이 28대 진덕여왕으로 즉위하고 뒤에 태종무열왕이 29대로 즉위하였다

 

 

 

77,신라 영토의 확장을 이룬 진흥왕(眞興王) 신라24대왕

  진흥왕은 백부 법흥왕의 뒤를 이어 서기 540년에 즉위하여 36년의 재위기간 국정을 쇄신하며 화랑도를 창시하여 무사도의 정신을 진작 시키고 고구려와 백제를 공략하여 국토를 확대하고 국위를 선양하며 성덕을 베풀고 말사흠의 손자 거칠부에 명하여 신라의 역사를 편수토록 하고 악기를 만들어 음악을 보급하며 불교를 숭상하였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슬하에 장자 동륜 銅輪(태자)은 일찍 죽었고 손자도 어려서 차자 사륜(舍輪)이 진지왕으로 승계 되었다

 

 

 

88,태종 무열왕의 조부 진지왕(眞智王) 신라25대왕

  진흥왕이 승하하여 동생인 사륜(舍輪)이 25대 진지왕으로 즉위하였다 특별한 치적의 기록을 발견할 수 없고 다만 죄인을 사면하고 백제군의 침공시 이찬 세종에 명하여 격파토록 명하여 3700명의 백제군을 소탕하고 내리서성(內利西城)을 축조하였다.
  왕이 재위 3년만에 서거하니 장자 용춘(龍春)은 어려서 장 조카 백정(伯淨)이 뒤를 이어 승계하니 이분이 신라26대 진평왕(眞平王)이다.

26대 진평왕 : 신라 왕조 중에서 53년간 재임하여 두 번째로 장수한 왕입니다 왕조에서 고구려와 백제가 자주 침공하여 영토와 성을 잃고 무열왕의 부친 용춘(龍春)과 김유신의 부친 서현(舒玄)공이 무장으로 등장 하여 삼국통일의 싹이 트이게 되었다

27대 선덕여왕 : 부친(진평왕)이 아들이 없이 승하하여 632년 자질과 지혜가 훌륭하여 백성들이 추대하여 왕위를 승계 선왕의 국책을 본받아 민심을 안정 시키고 당나라와 각별한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백제와 고구려를 제압하고 중국의 유교와 불교문화를 신라의 문화로 발전시킨 여왕이고 후사 없이 승하 하였다

28대 진덕여왕 : 선덕여왕의 뒤를 이어 647년에 즉위하여 친당정책을 쓰며 관복을 당나라 제도로 하고 이 때부터 춘추(태종 무열왕)의 활략은 후계 입신이 이루어졌다 재위8년간 돋보이는 치적 없고 후사없이 승하 하여 진지왕의 손자되는 김춘추(태종무열왕)가 나라의 추대로 왕에 즉위 하였다

 

 

 

99,삼국통일의 영웅 태종무열왕(신라29대왕)                                      

  태종무열왕의 휘는 춘추(春秋)요 신라 25대 진지왕의 장자 용춘(龍春)의 장자로 28대 진덕여왕 입종(立宗)의 셋째아들 국반(國飯의 딸)의 뒤를 이어 서기 654년 52세에 29대왕으로 즉위하여 고구려, 백제 삼국으로 정립된 민족의 통일을 이루기 위하여 고구려를 방문 호혜평등의 군사 동맹을 맺고 국제적 위상을 확보하고 재위7년 서기 660년에 백제를 평정하여 신라를 중심으로 한 통일의 1단계는 성공하고 고구려를 평정 못하고 서기 661년에 승하하니 장자 문무왕(法敏)이 선왕의 대업을 이어 명장 김유신장군과 고구려를 서기 668년에 평정하여 완전 삼국통일을 이룬 성군 지금도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문무왕
                            文武王
                            30대왕

        태종무열왕     인  문
        太宗武烈王     仁   問
          29대왕         호군

                            문   왕    강릉김씨의 시조
                            文   汪     주원의 고조부

                            외 8명(생략함)

 

 

 

1010, 태종무열왕의 장자 법민(法敏) 문무왕(文武王)

  장자 문무왕(휘 법민)의 아드님이 신문왕 손자가 효소왕 작은 손자가 성덕왕 증손자가 효성왕.경덕왕 현손 혜공왕 15년에 지정(志貞)의 난으로 왕후와 같이 자손없이 해를 당하여 절손 되었다 실제 여기에서 태종무열왕계의 왕통이 끝났다

  차자 인문(仁問)은 장군으로서 나당(羅唐)연합군을 창설하는데 성공하고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주역(主役)을 담당하고 당경(唐京)에서 병사하였다 (후손이 없음)

  3자 문왕(文汪)도 당나라에 들어가 당태종을 숙위하여 장군벼슬을 받고 당 고종이 등극하여귀국후 시중에 오르고 백제정벌에 참가하여 공을 세우고 665년에 돌아가셨다
  외 8명의 자는 생략함.

 

 

 

1111, 명주군왕의 증조부 휘 대충(大忠)

  문왕의 장자로 태종무열왕과 문무왕 양대에 걸처 삼국통일 정벌에 참전 하였으며 삼국통일후 신문왕대에 이찬(伊 ).중시(中侍)를 지내고 아들 사인(思仁)을 두었다

 

 

 

1212, 명주군왕의 조부 사인(思仁)

  이찬과 장군, 상대등을 지내고 슬하에 유정(惟靖)을 두었다  

 

 

 

1313, 명주군왕의 부친 유정(惟靖)

  이 어른은 서기 744년에 중시(中侍), 이찬(伊찬), 각간(角干), 상대등(上大等), 시중(侍中)을 역임하였고 화랑으로 호는 무월랑 배위는 박씨 연화부인으로 무월랑과 신어(神魚)이야기로 맺어진 연분이시다. 장자는 우리 강릉김씨의 시조이신 주원(周元)이시고 차자 내흥(奈興)으로 연안김씨의 상조 이시다

* 이상 강릉김씨의 시조 명주군왕의 직계상조의 행적을 간략히 살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