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만호공파

5 만호공파

9세 상기(上琦)호부상서 평장사

  참지정사 양(陽)의 둘째 아들로 의종 6년(1089)에 우산기상시(右散騎常侍)에 오르고 우상시(右常侍), 2년뒤에는 호부상서겸 정당문학을 지내고 이어 사관수국사로 승진 되었다 헌종 1년(1094)에 평장사에 오르고 예종 6년(1111)에 81세로 치사하니 시호는 문정(文貞)으로 선종묘(宣宗廟)에 배향되였다.

 

10세 인존(仁存) 시중

  호부상서 상기(上琦)의 장자로 대과에 급제하여 한림원에 출사한후 각부서의 요직을 두루거처 특히 고려사회에 유학진흥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숙종 10년(1105)에 중서사인으로 요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고 예종 4년(1109)에 우간의대부로 왕을 보좌하였으며 다음해는 중서시랑 평장사가 되어 왕명으로 열병(閱兵)을 했다 다음해에는 중서성령판병마사(中書省令判兵馬使)가 되고 이어 평장사상주국(平章事上柱國)에 오르고 검교태위 겸 태사태보를 역임하고 인종 5년(1127)에 수국사(修國史)을 맡고 4년뒤 문하시중(門下侍中)에 올랐다. 시호는 문성이고 예종묘에 배향되었다

 

11세 영석(永錫) 평장사

  시중 인존(仁存)의 장자로 문음으로 양온승동정(良온丞同正)으로 출사하여 대악서승(大樂署丞)과 두루 관직을 거처 문과시에 급제 담사부주부를 거처 형조원와랑과 예부랑중을 지내고 다시 외직으로 청주목.남원부사. 전주목을 거처 병부랑중과 예부시랑을 지냈으며 다시 조산대부비서감과 남경 유수사가되고 전중감을 거처 병부상서.이부상서를 역임하고 수태위(守太尉)에 특진하였다 동생영관(永寬)은 중서문하 평장사판 병부상서로 형제가 국정에 이바지하는 영예를 얻었고 의종 6년에 검교사도가 되었다가 평장사에 올랐다

 

12세 굉(宏) 한림학사

  평장사 영석(永錫)의 4자로 음문으로 출사하여 내시호부시랑(內侍戶部侍郞)과 한림학사(翰林學士)정5품에 올랐다

 

13세 혁승(革升) 서승   한림학사 굉(宏)의 장남으로 대묘서(大廟署)의 서승(署丞)정7품,

 

14세 변(弁) 판장작감판사.동북면병마사.

  서승 혁승(革升)의 장자로 고종 12년(1225)장작감판사를 거처 동북면병마사가 되었다 그해 동진병(東眞兵) 천명이 침입함으로 공의 군사로 하여금 토평하니 3군동원을 중단하였다 고종 19년(1232)에 내직인 대부시판사(大府寺判事)(정3품)가 되어 전후 수습과 항전대비를 했다

 

15세 수정(守精) 기거사인(4품)

  병마사 변(弁)의 장자로 과거에 등제하여 출사, 고종 23년(1240)에 중추원당후관으로 몽고원사의 지나친 요구를 저지하고 고종33년(1246)에 중서문하성의 기거사인(起居舍人)(종4품)이 되었다

 

16세 웅(雄) 예부시랑

  기거사인 수정(守精)의 장자로 문음으로 출사, 태학감서승과 안주목사를 거처 전법총랑(典法憁郞)을 지냈다

 

17세 칠초(七貂)상장군

  예부시랑 웅(雄)의 장자로 문과급제하여 충열왕 33년에 병부시랑과 총랑을 거처 충숙왕 8년(1321)에 중추원 부사에 오르고 여러 관직을 거처 예문관대제학겸판전리사사 상장군에 올랐다.

 

18세 당(당) 총랑   상장군 칠조(七貂)의 장자로 무관으로 출사 낭장(郞將)를 거처 총랑(摠郞)에 올랐다

 

19세 원봉(元鳳) 호부상서 동북면도지휘사

  총랑 당(당)의 장자로 충정 2년(1350)에 전중성감(殿中省監)이 되고 공민왕 5년(1356)에 기철(奇轍)의 모반 도당을 토평하는데 공을 세웠다. 왕명으로 동북면병마부사가 되어 원(元)에 빼았겼던 쌍성을 백년만에 탈환하였고 함주(咸州)이북땅을 수복하는데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호부상서에 오르고 이등공신에 책록되어 부모 처의 봉작도 함께 올랐고 공민왕 8년(1350)에 홍건적 4만이 의주를 침략함에 따라 도지휘사로서 적을 막으려 분전하다 전사하였다

 

20세 영화(永華) 중추원사

  호부상서 원봉(元鳳)의 장자로 우왕 4년에 대부시 주부로 출사하였다 왜적이 강화도에 침입하자 박보노의 휘하에 참전, 전공을 세우고 공민왕 8년(1380)에 합문통사사인(合門通事舍人)정7품에 오르고 공민왕 4년에 전중감(殿中監)에 올랐으며 중추원부사(中樞院副使)가 되었다 이때 정몽주가 피살되고 배극겸이 수문하시중이 되자 국운이 다하여 득병을 칭하여 낙향하였다 조선조를 개창하고 입조를 청했으나 입조하지 않았다

 

21세 상전(尙全) 예조참판

  중추원사 영화(永華)의 2자로 태종 15년(1414)에 문관시에 급제하고 제용감봉사로 출사 각 부서에서 주부, 판관을 역임하고 첨정과 부정을 거처 예조참판에 올랐다

 

22세 문취(文就) 부정.강릉군

  예조참판 상전(尙全)의 장자로 세조조에 출사하여 군자감부정을 지냈다 중종원년 (1506) 9월에 둘째아들 경의(敬義)가 중종반정의 공훈으로 부모에 작훈으로 증 가선대부, 병조참판겸 동지의금부사에 올랐고 순충보조공신과 강릉군으로 추증하였다.

 

23세 경인(敬仁) 만호(종4품) 만호공파조

  부정 문취(文就)의 장자로 훈련원에서 시취(試取)하여 봉사에 출사하여 참군과 주부를 지냈으며 외관직으로 경기도 초지량만호(草芝梁萬戶)를 지냈다.

 

24세 학(鶴) 감찰

  만호 경인(敬仁)의 장자로 가업에 성실하여 재력이 자족하며 학문이 출중하여 향리성동교화에 힘썼다

 

25세 득련(得鍊)   감찰 학(鶴)의 장자. 자손이 김포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덕적

32세 흥추(興秋) 용양위부호군   부 선재(善載),

 

33세 인국(仁國) 어모장군행충무위부사 겸 내금위장   승길(承吉)의 6세손 부 문추(文秋),

 

33세 원국(元國) 병참 오위도총부부총관   승길(承吉)의6세손.옥추(玉秋)의 장자,

 

33세 관국(寬國) 절충장군   옥추(玉秋)의 2자,

 

33세 양국(亮國)훈련원첨정   옥추(玉秋)의 3자,

 

34세 병덕(秉德)통정행용양위부호군   승길(承吉)의 7세손.부 원국(元國),

 

34세 두석(斗錫) 사고참봉(史庫參奉)   호군 병덕(秉德)의 자,

 

34세 홍중(弘重) 참봉   복일(福日)의 손자,

 

35세 연문(演文) 장사랑 참봉   선재(善載)의 5세,

 

35세 연윤(演允)참봉   연문(演文)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