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총랑공복구정파

21 총랑공 복구정파

19세 원혁(元革) 총랑

  전리총랑 광갑(光甲)의 3자, 음사로 원외랑으로 출사하여 낭중을 거처 병조병부사총랑(정4품)을 지내고 천원군 목천면 복구정에 정착 복구정파조이다.

 

20세 계사(季思) 현감  

  총랑 원혁(元革)의 3자, 음사로 군기시 봉사로 출사, 직장 주부를 거처 진보현감을지냄

 

21세 창(倡) 교위

  현감 계사(季思)의 장자로 태종조에 무관으로 출사하여 경관직의 승의부위를 거처 창신교위(종5품)를 지냈다

 

22세 달손(達孫) 판관   교위 창(倡)의 장자, 음사로 군기시 봉사로 출사, 주부와 판관(종5품)에 오름

 

23세 세영(世英) 습독(종9품)   음사로 사역원(司譯院) 습독,

 

24세 진충(盡忠) 판관

   습독 세영(世英)의 2자, 음사로 훈련원 봉사로 출사하여 참군 주부를 거처 판관에 올랐다

 

25세 원개(元凱) 증판윤 선무원종공신

  판관 진충(盡忠)의 자로 자라면서 학문과 언동이 비범하였다 겨울에 부모가 생물고기를 원하기에 하늘에 기원하였더니 어름이 풀리고 물고기가 나와 봉양하니 감탄하고 학문은 물론 병서와 육도삼략에 통달하여 선조 21년(1588)에 무과에 급제하여 임진년엔 만호로 재임하며 필마로 적군 수십구를 베고 어가를 호송하며 잠시도 왕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때 왕이 내린 포상은 모두 군사들에 나누어주고 선조28년(1595)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록되었다.

 

26세 구연(九淵) 공신 호 백인당

  선무원종공신 원개(元凱)의 자로 임난에 부친을 따라 왜적을 섬멸하니 선조(宣朝)께서 충의(忠義)로 판관첨추(判官僉樞)을 제수하고 2등훈에 책하였다 부친3년시묘에 효성이 지극하였고 쌍천(雙川)귀석(龜石)에 정자를 짓고 제액하여 복구(伏龜)라 하였다 (여지승람)

 

27세 진명(振溟) 참봉   공신 구연(九淵)의 장자,

 

28세 만진(萬珍) 동추   참봉 진명(振溟)의 자,

 

29세 홍원(弘遠) 참봉   동추 만진(萬珍)의 2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