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판윤공문의파

20 판윤공 문의파

19세 종혁(從革) 판윤

   전리총랑 광갑(光甲)의 2자로 문음으로 중앙관서에 출사하여 중형 도찰사 사혁(斯革)과 고려조에 공헌하다가 여말에 충북 문의군 동면 노현리에 정착하였으나 이성계가 조선조를 개창하고 공을 한성판윤을 제수하였으나 절의를 생각하여 나아가지 않았다

 

20세 호(皓) 돈령부정

  판윤 종혁(從革)의 장자로 음직으로 중상서의 승으로 출사하여 영(정6품)을 지내고 동부서 봉상시의 판관첨정을 거처 돈령부의 정(正)을 지냈다.

 

21세 환(渙) 생원    돈령부정 호(皓)의 자 생원 등제,

 

22세 철동(哲同) 중추부판사

  생원 환(渙)의 장자로 음직으로 사간원 직장과 주부 판관, 첨정을 지내고 중추부판사(종1품)를 지냈다

 

23세 용지(用砥) 한성부서윤   판사 철동(哲同)의 장자로 한성부로 출사하여 서윤(종4품)에 오름 ,

 

24세 우성(遇聲) 진사   서윤 용지(用砥)의 자,

 

25세 전세(傳世) 군수

  진사 우성(遇聲)의 4자 음사로 봉상시 봉사로 출사, 주부 판관을 거처 한산군수를 역임함.

 

27세 홍유(弘裕) 진사   전구(傳久)의 손자,

 

27세 홍록(弘祿) 현감   군수 전세(傳世)의 손자,

 

32세 추진(秋鎭)이효 증 조봉대부 동몽교관   시명(始溟)의 3자,

 

32세 계연(啓淵) 좌부승지겸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

  추진(秋鎭)의 2자로 1786년 19세에 진사시에 등제하고 1801년 문과대과에 급제하여 의정부사록으로 출사하여 성균관 전적.사헌부감찰를 거처 사헌부 지평에 오르고 훈련원 정언과 이조정랑을 거처 사헌부장령,비인현감등 여러 관직을 맡았고 승정원 우부승지겸 경연참찬관 춘추관수찬관을 거처 좌부승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