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모암공연기파

16 모암공 연기파

23세 임계(林繼) 장사랑 전참봉

  사평 귀성(貴誠)의 2자 세종 24년에 진사과에 등제하고 음직으로 전참봉을 지냈으며 장사랑(정9품)품계를 받았다

 

24세 흡(洽) 병조좌랑(정6품)

  장사랑 임계(林繼)의 장자로 음직으로 훈련원봉사로 출사하여 주부판관을 거처 병조좌랑을 지냈다

 

25세 관(琯) 장예원사평(정6품)

  병조좌랑 흡(洽)의 장자, 음직으로 형조율학훈도(정9품)로 출사하여 심율(審律)(정7품)을 거처 형조도감사평을 지냈다.

 

26세 석강(碩江) 참봉   사평 관(琯)의 자,

 

27세 오(鰲) 수직 가선

  참봉 석강(碩江)의 자로 논산군 노성면 한천동에서 세거하다 임란으로 연기군 서면 청라리에 정착하였다

 

28세 외천(畏天) 동몽교관   오(鰲)의 장자,

 

32세 원일(元一) 절충장군 첨사

  담(淡)의 장자로 무과에 등제하여 1708년 출사하여 죽산 토보사 절충장군을거처 지세포수군첨절제사와 (동년 9월) 마량진수군병마절도사를 지낼때 관내 백성 105명이 사경을 헤맬 때 이를 구하여 왕으로부터 양마1필과 포상을 받았다

 

33세 선(璿) 무과 병마절도사

  영추(榮秋)의 장자. 숙종 43년(1717) 무과에 등제하여 수문장과 훈련원주부를 거처 장벌현감겸 경주진관병마절제도위와 절충장군 용양위부호군첨지를 지냈다.

 

33세 연(璉) 효자 정려

  익려(益礪)의 장자. 부친병환에 단지수혈로 생명을 2년이나 연장하고 시묘3년에 남다른 효성으로 정려를 받았다

 

34세 언(언)문과급제 찰방    32세 덕추(德秋)의 2자,

 

35세 한정(漢鼎) 효자

  상문(尙文)의 장자로 20년간 부모의 고질병을 하루같이 정성을 다하여 시병, 부모가 70장수를 누리게하여 유림이 공의 효행을 주달 조정의 정려를 명받아 연기군서면 쌍류리에 정려를 건립 배향하고 있다.

 

35세 종철(宗喆) 효자

  상기(尙基)의 자 8세부터 효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어린 나이에 모친병환에 찬 이슬을 맞으며 하늘에 기도하고 모친이 식사하는 수저의 각도를 살피며 맛있게 드시나를 알아차리고 반드시 맛을 먼저 본 다음에 드시게 하였다 어느날 종을 동행하여 의원을 찾아가는데 대호가 나타나자 동행한 종이 혼비백산할때 어린 종철(宗喆)은 종을 타이르니 유유히 다가가니 대호가 사라졌다 부모에 시종이 극진한 효성으로 고종5(1817)에 정려하고 조봉대부 동몽교관에 추증되었다

 

36세 경현(景賢) 무과 운진현령   상기(尙基)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