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모암공파

13 모암공파

20세 천익(天益)병.공판서 한성판윤

   충절공 사혁(斯革)의 3자로 1368년 보위위주부(補衛尉注簿)로 출사하여 여러 관서를 거처 1381년 밀직대언, 다음해에 민부전법 이부총랑에 승진하고 1388년에 전리총랑(典理憁郞)과 외직 서주목사의전로에 임하였다 이때 이성계의 회군으로 공은 내직으로 신호위랑장(神虎衛郞將)에서 판봉상사(判奉常寺事)에 승진하였다 1390년 가우(家憂)로 복거(卜居)중 조선조가 개창되어 태조가 어찰로 입조를 청하여 예부전서에서 1395년 전리사판서를 거처 서경유수을 지냈고 풍해도 관찰사를 거처 전병판서, 1403년에는 검교 한성판윤 겸 전공판서를 지냈다.

 

21세 덕숭(德崇)효자 한산군수 모암공

  판윤공 천익(天益)의 장자로 상의국 직장으로 출사하여 1396년 24세에 사헌부장령을 거처 태종원년(1400)에 목천현감, 1408년 낭천(화천)감무로 전임하여 그곳에서의 치적의 공적으로 군자감 주부로 승진(화천읍지)하고 성균관사업 이조좌랑을 거처 외직으로 온양 군수를 지내고 1427년엔 한산군수로 재임중 부친이 77세 고령으로 부모봉양을 위하여 사임했다. 부모의 효성이 지극하여 삼강행실도에 실리고 천하대효라 하였으며 정려하고 백원서원을 사액했다.

 

22세 귀성(貴誠) 사평

  모암공 덕숭(德崇)의 장자로 1427년 전위사직장(典渭司直長)으로 출사하여 2년후 상예원 사평을 거처 청주판관으로 전임하고 1434년 평의사를 거처 조봉대부 지돈령부도사를 거처 호세위상장군(虎貰衛上將軍)이 되고 1441년에 부지돈령(副知敦令)을 지냈다

 

23세 안계(安繼) 상산진일

  모암공의 장손으로 세종24년(1441)에 진사과에 등제하여 다음해 돈녕부승(敦寧府丞)으로 발령받았으나 삼세중시하(三貰重侍下)에서 녹봉을 바라지 않고 대과에 연연하여 출사하지않고 자호를 상산진일라하였다 그러나 대과 별시 (1455년~1456년) 양년에 입시하였으나 하제하고 부친시묘중여막에서 36세에 졸하였다

 

24세 언경(彦庚) 경기병마절도사

  모암공의 장손 안계(安繼)의 장자로 세조6년(1460) 무대과에 급제하여 도총부로 승진하고 1468년 36세에 의주부윤과 삼척부사.강릉부사를 거처 경상우절도사를 거처 평안도병마사와 경기병마사로 전임되었다가 파주에 정착하였다.

 

25세 창(창) 목사

  병마사 언경(彦庚)의 장자로 성종12년(1480)에 생원과에 등제하여 제용감 부봉사로 출사하여 봉사와 직장 주부를 거처 황해도 강음현감 희천군수를 거처 안주목사를 지냈다

 

26세 흥원(興元) 사마   목사 창(창)의 장자,

 

27세 긍(兢) 생원   사마 흥원(興元)의 장자,

 

진천 마옥

26세 흥종(興宗) 현감   목사 창(창)의 2자,

 

29세 원(원) 진사   현감 흥종(興宗)의 증손,

 

문경 가은

26세 근공(謹恭) 훈도   목사 창(창)의 3자 ,

 

온양서산

25세 호(瑚) 병마절도사

   병마사 언경(彦庚)의 차자로 무과에 급제하여 오위부사맹으로 출사하여 사저, 사과, 사직과 충청,평안병마사를 거처 훈련도정, 지돈녕부사시와 오위부부총관을 지냈다.

 

27세 정준(廷俊) 사직   병마사 호(瑚)의 손자,

 

28세 형윤(亨胤) 도사   사직 정준(廷俊)의 5자,

 

29세 식(埴) 부호군   사직 정준(廷俊)의 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