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판서공청풍파

2 판서공 청풍파

17세 광록(光祿) 영(令)

  진사 취제(就第)의 장자로 음직으로 대묘서승(大廟署丞)으로 출사하여 영(令)종5품을 지내고 청풍파조 이시다

 

18세 원조(元祚) 영동정(令同正)

  영사 광록(光祿)의 자로 고려 충선왕 5년(1313)에 영동정(令同正)을 지냈으며 자 하림(夏林)을 두었다

 

19세 하림(夏林) 증 예의사판서

  영동정 원조(元祚)의 자로 고려말 유왕조에 왜적이 전국 해안에 침투 양곡을 약탈하여 공이 교주도(交州道)부원수 휘하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 이에 조선 태조조에 예조사판서를 증직 받아 후손이 판서공 청풍파라 한다

 

20세 현(賢) 양양부사

  하림(夏林)의 2자로 이조 원년(1392)에 사마시에 등제하여 직장으로 출사하여 사헌부감찰 안동판관등을 거처 양양부사를 역임하고 제천 청풍에 정착하였다

 

21세 원적(元籍) 감찰

  현감 현(賢)의 자로 세종17년(1435)에 사헌부 감찰를 지냈다 슬하에 독자 자형(自荊)을 두었다

 

22세 자형(自荊) 충순위

  감찰 원적(元籍)의 장자로 무관으로 출사하여 충순위(忠順尉)에 오르고 73세에 졸여 충북 제천군 금성면 진리 재양산에 장사하였다 슬하에 1남1녀로 자는 승중(承重)을 두었다

 

23세 승중(承重) 부사정(副司正)

  충순위 자형(自荊)의 장자로 연산조 5년(1540)에 내금장부사정(內禁將副司正)을 지내고 2자와 3자의 후손은 무전하였다 장자 윤호(允灝)의 4자 윤옥(允沃)이 승종하였다

 

24세 윤호(允灝) 현감

  부사정 승중(承重)의 장자로 중종21년(1516)에 랑천 현감을 지내고 중종28년에 서부주부를 거쳐 다음해 음성현감을 지내고 장자 세광(世曠)의 후손은 제천 청풍, 두곡, 사창 지역에 차자 세명(世明)은 곡금에 3자 세휘(世暉)는 후손이 월굴리 중전리에 세거하였다

 

25세 세광(世曠)부사직

   현감 윤호(允灝)의 장자인 세광(世曠)은 명종7년(1552)에 의흥위부사직(義興衛副司直)을 지내고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으며 장자 무달(武達)의 후손은 청풍사창에, 2자 희달(希達)의 손은 충주 화암에 세거하였다

 

25세 세명(世明)

  현감 윤호(允灝)의 2자인 세명(世明)은 장자 응상(應祥)이 부장을 지냇고 후손이 곡금에 세거 하였다 

 

25세 세휘(世暉) 참봉

  현감 윤호(允灝)의 3자 세휘(世暉)는 명종17년(1562) 사역원참봉(司譯院參奉)과 장사랑을 지내고 자 충달(忠達)의 후손이 중전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다

 

26세 무달(武達) 수직 중추동지사(中樞同知事)

 

27세 선경(善鏡) 수직 가선대부

 

29세 신강(信剛) 부호군

 

24세 윤옥(允沃)

   부사정 승중(承重)의 4자 윤옥(允沃)은 중종 35년(1540)에 충무위 충순(忠武衛忠順)을 지내고 장자 세요(世曜)의 후손은 제천 대류지역에 세거하고 차자 세희(世희)는 제천 죽하에 3자 세흔(世昕)의 후손은 청풍 월굴에 세거하였다

 

25세 세요(世曜) 충순

   충순 윤옥(允沃)의 장자인 세요(世曜)는 명종 20년(1565)에 충무위충순(忠武衛忠順)을 지내고 장자 계종(繼宗)은 통정으로 후손이 경북 문경 남면 점촌과 제천 근서면 대류리를 중심을 세거 하였다 

 

25세 세희(世晞) 충순

   충순 윤옥(允沃)의 2자 세희(世晞)은 선조 3년 (1570)에 충무위 충순을 지내고 질 계업(繼業)은 계자로 제천 죽하리에 세거하였다 

 

25세 세흔(世昕) 선략장군

  충순 윤옥(允沃)의 3자 세흔(世昕)은 선조 7년(1574)에 조봉대부(朝奉大夫) 선략장군(宣略將軍)을 지내고 장자 계업(繼業)을 백부에 출계했으며 차자 계도(繼道), 3자 계서(繼緖), 4자 계흥(繼興)의 후손들은 청풍 월굴리를 중심으로 세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