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나의조상

 

빛나는 나의 조상

1 상 계

5세 영진(英珍) 대내마

  민혜왕 2년(839)에 당숙 김양(金陽)이 민혜왕을 몰아내고 우징(祐徵)을 신무왕으로 옹립하였다 그러나 1년이 못되어 왕이 승하하였고 문성왕이 즉위하자 양(陽)이 소판겸창부령(蘇判兼倉部令)이되니 공이 창부와 악부집사부(倉部와岳部執事部)등의 아찬(阿찬:관급5등급)을 역임하고 명주로 귀향하여 선대의 뒤를 이어 명주를 다스렸다

 

6세 식희(式希) 개국부의삼사사 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 사심관

  명주군왕의 6세손으로 대내마 영진(英珍)의 장자로 서기918년(경명2) 왕건이 고려를세우고 날로 세력이 커지고 있었다. 한편 신라가 허물어져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대야성을 침공하며 경향각지에서 크고 작은 초적들의 반란이 끓임없이 일어나 국정이 극도의 혼란에 빠졌을.때 공은 명주에서 왕성(王城)으로 파견되어 대장군 손긍훈(孫兢訓)과 함께 화랑의 군사훈련장인 대작갑사(大鵲甲寺)에 들어가 수만의 군사를 양성하였다. 그러나 견훤이 궁성을 침범하니 고려의 왕건에게 견훤을 격파할 것을 제의하고 황산성(黃山城)에서 대승을 거두어 고려의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워 개국부의삼사사삼한벽상공신 삼중대광태사( 開國府儀三事司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로 봉작을 받았다. 지금 청도 운문사(雲門寺)에 공의 영정(影幀)을 모시고 매년 음9월9일 제례를 행하고 있다.

 

7세 춘용(春用) 병마사 당대등 (호장:고려사)

  강릉최씨세보에 의하면 풍천 병마사겸 안집감창사(安集監倉使)를 역임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명주를 다스렸고 공의 따님이 강릉최씨 시조 필달(必達)공의 증손 최숭언(崔崇彦)에 출가 하였다.

 

8세 기예(奇禮) 경(卿:종3품)

   당대등 춘용(春用)의 4자로 개경(開京)의 중앙관서 대부시(大府寺)의 주부로 출사 경(卿:종3품)에 이르렀다

 

9세 소(召)호장(戶長)

   명주를 다스리는 호장으로서 수차례 동여진(東女眞)의 침입을 방비하고 선정으로 민심을 안정케 하였으며 덕종 2년(1032) 3월에는 간성현 백석포에 해적이 침입하자 이를 격퇴 그 중 50여명을 생포하는 등 외적 방어에도 힘썼다

 

10세 방감(方監) 호장(戶長)

 

11세 보(甫) 대장군

  방감(方鑑)의 장자로 문무를 겸비하였다 그는 무관으로 출사하여 대장군에 이르렀으며 정종(靖宗)7년 5월에는 왕이 태조능에 다녀와 상호군 홍빈(洪賓)과 대장군 김보(金甫)에게 말1필씩 사(賜)하도록 감찰어사 김경(金瓊)에게 명한 일이있다.(고려사)

 

12세 수문(守文) 호장

 

13세 석(錫) 랑장(郞將)

  호장 수문(守文)의 2자로 무과에 급제하여 충용사위별장(忠勇四衛別將)으로 출사하여 의종(毅宗)24년(1170)에는 장사(長史)를 거쳐 낭장(郞將:정6품)을 역임하였다

 

14세 희유(希有) 진사

  랑장 석(錫)의 장자로 진사과에 급제하였으나 향리에서 후학 교화에 힘썼다,

 

15세 영(英)호장

 

16세 취제(就第) 진사

  호장 영(英)의 장자로 고려 고종8년 (1221)에 사마 진사가 되고 슬하에는 2자를 두었는데 장자 광록(光祿)은 령(令)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