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의 숨결 (27)----- 청간사(淸簡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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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청간사 (淸簡祠)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여 높은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기리는 사당이다.
서기 1769년 (조선조 영조)에 강릉김씨 삼왕대종중에서 매월당 영당을 건축하여 영정을
봉안하고 다례를 봉안해 오던 중 6,25 전쟁에 병화로 소실되었는데 1854년에 복원하고
매년 춘분일에 강릉김씨대종회에서 주관하고 강릉향교 유림의 집전으로 대제를 봉행하여
충효사상을 전승하고 있다.
< 중건 연혁기>
청간공 영당은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하여 공의 높은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고 정신을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사당이다.
공의 자는 열경, 호는 매월당, 동봉, 청한자, 췌세옹이고 승명은 설잠으로 5세시에
세종대왕으로부터 특몽천포하고 삼각산에서 공부하던 중 단종 손양위의 소식을 듣고
분기서하여 심유적불로 평생 탁세방랑으로 충절을 지키며 수많은 문적을 님기고
59세(1434-1493)에 충남 홍산(만수산) 무량사에서 입적하니 전국 유림에서 공의 충절을
상소하여 생육신에 존봉되고 1784년 정조대왕 (8년) 으로부터 청간의 시호를 받았다.
이와 같이 공의 충절은 이 나라 수호의 초석이 되었고 학문은 한국문학에 기초가 되었다.
그러므로 충절과 학덕을 추모하고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영조 기축 (1769) 4월
삼왕대종중에서 제종첨의로 매월당 영당을 재사 하단 동편에 건립하기로 의결하고
제종의 유사 구재로 종림게례 학원 등이 주관하여 목조 3간청으로 정문과 정문 좌우로
협문을 내고 문 외의 정면에 퇴헌이 있게 하여 와용으로 건축하였고 담장은 전면에만
석축하여 출입문이 있게 하고 좌우 후면은 오동나무를 식수하여 주위를 그윽하게 하고
양주청절사의 진본을 모사하여 본당에 봉안하고 매년 다례를 봉행하며 수시로 본당을
보수 유지하던 중.
6,25사변에 병화로 전청이 소진되면서 영당에 연화되어 영정을 봉안할 수 없으므로
피난 후 수복하여 숭의재를 복구하고 갑오(1954)에 숭의재 서편 삼백보 허에 목조
삼간(12평)에 퇴헌을 달아 와용으로 건축한 후 병화로 이봉하였던 영정을 본당에 봉안하고
유사로 하여금 매 삭망일에 분향하며 능향일에 다례를 봉행해 왔으나 이 날에는 번잡하고
정숙치 못하므로 무진년(1988)부터 매년 춘분에 다례를 봉행하며 수시로 영당을 보수
유지하면서 고의 충절을 기리고 있다.
서기 1989년 월 일
강릉김씨대종회 고문 김동기 근지
자료 : 강릉김씨 천이백년사, 177쪽
( 대종회 김관기 원로위원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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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조상의 숨결 (27)-----청간사 (淸簡祠)|작성자 청풍 김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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