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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숨결 (26)----- 숭의재(崇義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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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6-15 13:13 조회6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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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숭의재(崇義齋)


왕릉 제사를 위해 지은 재실로서기 1565년에 재실 2칸을 창건하여 그 이름을 

1858년부터 사촌재실(삼왕동고호)로 했다가, 1889년에는 삼왕재실로, 1925년 이후에는 

숭의재로 불러 오고 있다.

1950년 6.25사변에 병화로 전소되었는데 1952년에 서재(西齊), 1955년에 본재(本齊)와 

동재(東齊)를 중건복원하였다.


<중건 연혁기>

숭의재는 강릉김씨 시조이신 명주군왕 휘 주원공의 능소를 수호하고 제례 봉공을 위하여 

영건한 전청이다.

시조의 25세손인 숙간공 예조판서 첨경이 명종 17년 (가정 신유1561)에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능소를 수릉하고 능하 서편 이백보 (현 삼왕사 부지)터에 전각 2간을 제종 

구재로 건립하여 일간에는 불상을 봉안하여 흥복암이라 하고 사천면의 룡연사

청학사 2개 사찰과 보현사의 승려로 하여금 체직으로 능소를 수호하여 오다가 

숙종 27년 (경진 강희 39, 1700)에 이르러 구각의 훼손으로 누수되고 협소하여

종의에 의하여 제종의 구재로 전청과 유사 방 2직실 2물장치방 1주방 1간 

등을 목조와즙으로 중건하여 직실은 흥복암으로 사용하고 상량문은 

생원 김기(호 롱와, 29세손)가 숙종 44년 (강희 59년 정유 1717) 4월에 근기하였고 

영조 39년 (무인 1758)에 도차지 성일진사학빈과 도감승 자행 외 수인이 중심이 되어 

무인 2월에서 7월에 걸쳐 중수하고 사촌재사라 칭하였다.


숭정후 오 병자(고종 14년 1876)에는 계유대보(1873) 발간 후 여재 800양을 기금으로 하여 

차지인 시연 외 유사 등이 중심이 되어 보수하고 의관 연식이 중건기를 근술하였으며 

고종 27년 (기축 1889) 춘에재사 일부가 회신된 것을 유사인 선경 외 수인이 종재로 

보수하여 삼왕재실 이라 개칭하였다.

그 후 경신대보를 발간한 여재로 을축(1925) 년에 유사인 호경 외 수인이 보수하고 

의관 연채가 삼왕재를 순의재로 개칭하여 중수기를 근술하고 현판은 판사 윤용구의 

서필로 게청하여 이로부터 숭의재로 호칭하였다.


경인년 (1950) 6,25 사변으로 재사가 전소되어 수복 즉시 전란의 와중에서도 재사를 

재건하여야 한다는 제종의 숭조정신으로 난상수의 끝에 전청과 재실을 재건하기로 

의결하고 재건기성회장에 국회의원 진만부회장에는 창강 진완과 오서 봉진을 선임하고 

총무에는 석기익남병기 등으로 회장단이 중심이 되어 각 파별로 기금을 배분하여 

부정공파와 평의공파에서 각 7만원옥가위촌선연파에서 각 2만원청풍파에서 5천원

횡성파에서 3천원 등합계 20만 8천원으로 재실을 보광리 삼왕동 838번지 소재인 

현 위치로 옮기어 서재 2간 (건평25)을 재건하고 갑오(1954)년에 전청 건축비로 능산 

임목대금과 종인의 특지금으로 충당하기로 하되 성금 1만원 이상의 특지가에게는 

기념비에 각명토록 하여 수전유사에 연목 외 5인이 불고가사하고 본 기금 수합에 

전심전력을 기울여공사를 진행케 하였다.


목공에는 연유록경과 거공에 홍기석공에 린기최태식화공에는 방재룡 등으로 

을미(1955)년 3월 10일에 착공하여 동년 3월 17일에 입주하고 윤 3월 29일에 4, 5대 

대종회장인 김봉진(태종무열왕릉 참봉)이 상량문을 근술하고 퇴헌 계초석을 신축하는 

한 편 동재(13대 좌익랑 (11), 계하 직실 3간 (12등을 신 증축함으로써 총 공사비 

4만원이 투자되어 병신(1956)년 4월에 무려 4년이란 장구한 기간에 걸쳐 준공을 보았으니

이는 대종회장을 중심으로 한 전 임원이 불안불휴로 전 심혈을 경주하여 전 종인이 

숭조애친정신으로 전란 중임에도 갖은 고난을 극복하며 함께 동참한 결정인 것이며 

본 전청은 명주군왕 능소 수호의 본당으로서 전 종인의 화합을 이룩할 것이고 숭조정신의 

산 도장이 되어 만세에 길이 빛날 것입니다.

끝으로 자손이 다 함께 화합 단결하고 정성을 다하여 영세 불멸토록 세전하기를 

소망하면서 본 기문을 근술합니다.


                       명주군왕 기원 1171년 병신 5

                       명주군왕 37세손 진완 근식

                                   38세손 흥기 해설


      자료 강릉김씨 천이백년사, p164

     ( 대종회 김관기 원로위원 옮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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