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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숨결 (21)----- 시조 명주군왕 능향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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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5-17 07:10 조회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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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시조 명주군왕 능향대제

 

   명주군왕 (휘 주원)의 능소는 신라시대의 분묘로 유형지방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된 관동지방의 유일한 문화재이다.

   신라시대부터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는 능소로는 명주군왕의 능소를

   비롯하여 경주를 중심으로 한 신라 왕릉과 김해에 있는 수로왕릉 및 

   1972년도에 출토 발굴한 백제 무령왕릉 등이 있을 뿐이다.

 

   묘제는 고대 부계사회가 형성되면서부터 경로효친사상과 함께 가정과

   후손의 번영을 기원하는 관습에서 지금까지 전하여 오고 있으나 

   능향의 의식례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국왕이 열성조를 추모하고 

   그 국가의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관행에서 고대사회로부터 

   능향을 올려 오고 있는 의례이다.

 

   명주군왕은 서기 787년 원성왕 3년에 왕으로부터 영해에서 통천 

   아간의 영동지구와 인제홍천평창정선 등 영서지구의 

   일부(신라 원성왕조지리지)를 당시 통칭 명주(일명 북빈경)를 

   식읍으로 할양 받아 후손이 세습적으로 통치하면서 명주군왕의 

   종묘를 세워 매년 국태민안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하여 종묘에 

   제향을 봉행해 왔다.

 

   고려 왕건 태조에 이르러 명주지역에 주원계의 세력이 막강하고 

   명주군왕의 5세손 영길의 여식인 옥경대주가 고려 태조비로 

   입궁하여 태조가 명주군왕의 입강 유래를 뒤에 듣고 공의 

   왕위사양지덕을 칭송하여 만고에 없는 성현으로 백세지사라 하여 

   명주군왕 종묘를 만세사라 사액하고 불천지주로 모시게 하여 

   관급으로 향사를 봉행해 왔다.

 

   조선조 명종16(1561, 신유)에 25세인 첨경(添慶)공이 강릉부사로 

   부임하여 능소를 수축하였다.

   이로부터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 소재 능소에서 매년 

   음력 4월 20일에 능향을 올리기로 하여 제수는 강릉부사에서 

   전례에 따라 공금으로 제물 전부를 공급하고 향사 전일에는 

   부사가 향청의 좌수를 능소에 보내어 입제케 하여 제물을 

   보살피게 하고 제일에는 부사가 주제자로 봉행하여 오던 중 

   왜국의 강압에 의한 을사보호조약(1905) 체결에 따라 

   병오(1906)에는 일본이 우리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당시 강릉군수 이재화제물 관급제도를 철폐하고 자손에게 능향을 

   맡김으로 해서 그 뒤로는 종중에서 제물을 마련하여 능향을 올렸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후 정부수립과 함께 우리 전통문화행사로 

   명주군수가 제주 및 전수 일부만 관급하고 여타 전수는 종중 재원으로 

   마련하고 군수가 초헌관이 되어 이 고장의 풍년과 국태민안을 

   기원하여 지방전통문화를 육성 발전케 하는 동시에 후손에게는 

   동근상목과 숭조효친사상을 앙양하는 교화장이 되어이후 국가 

   사회 발전에 기여할 계기가 된 것이다.

 

   자료 강릉김씨 1200년사 P 193-6

 

   * 원문 중극히 이해가 어려운 단어는 쉬운 말로 풀어썼으며

   너무 긴 문장은 두 문장으로 나누어 썼음.

 

                  정리 김관기 (원로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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