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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철----- 王縣城 (溟州의 治所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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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5-09 13:55 조회127회 댓글0건

본문

1. 王縣城 (長安里)

 

강릉김씨의 후손이라면 명주군왕의 궁터가 어디였을까? 라는 궁금증은 모두가 가지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협소하여 집 한 채 지을 터와 작은 우물 하나밖에 없는 금산리 장안골을 명주군왕의 왕궁터라 믿고 있는 종인들에게 그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고 후손에게도 이를 밝혀주어야 되겠다.

명주군왕의 궁터를 찾으려면 지명유래와 고려시대의 강릉 김씨 호족이 어디에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찾으면 명주성의 궁터를 쉽게 밝힐 수 있다

즉 왕김파(평의공파)의 중시조 왕예(김예)는 만석군으로 김순식(왕순식)과 함께

왕건을 도와 고려를 건국하였는데, 이때부터 명주군왕(김주원공)의 터전을 강릉김씨 평의공파가 명주의 성주로서 신라의 왕궁터(강릉시 구정면 학산리)를 다시 지키게 되었다. 이곳을 王縣城(왕이 살던 고을 즉 명주군왕 치소가 있던 곳)이라 하며 지금까지 그렇게 전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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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리

그 이유는 증수 임영지에 굴산사는 명주군 관아(치소)를 복원하여 절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평의공파 족보를 보면 왕예 이후 대를 이어 명주(王縣城)의 성주를 강릉김씨 평의공파가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장안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王峴(왕고개)이라 하며, 어단리, 옥봉, 선래, 군선강, 명선문, 봉화대, 금괭이, 칠성산, 왓골, 태봉(貞福阿只 공주의 태), 어단천을 해자로 하는 토성 등 王縣城의 유적지 및 지리적 명칭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굴산사가 있었던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는 명주군왕의 치소(궁궐터)였다고 감히 주장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는 실증적 자료들을 살펴보자.

명주군왕 치소(왕궁 터)와 굴산사에 관하여 기록된 증수 임영지를 살펴보면

완역 증수 임영지(강릉문화원) 1997. 12. 31. 叢話 P 138

이에 대한 상기 원문은 증수 임영지 (전 강릉군수 용택성 강릉고적 보존회)

소화 88叢話(총화) P 七十七

古 老言 溟洲 初建之 日 梵日 創大寺干 官舍之基 僧徒主之 其後寺利 燬於兵燹 府館 移搆 

(고 노언  명주 초 건지 일 범일 창 대사간 관사지기 승도주지 기후사리 훼어 병선 부관 이구)

焉帷 沙門 獨存 卽今 外大門也 故 掃除 大門至今用 僧匠 意然也.

(언유 사문 독존 즉금 외대문야 고 소제 대문지금용 승장 의연야.)“ 라고 되어있다. 여기서 官舍라 함은 官衙(治所)이며,

이를 해석해보면

옛 노인들 말에 의하면 명주가 처음 세워지던 날 범일이 관사 터(명주군 관아 터)에다 큰 절을 세우고자하니 스님들이 그 일을 주관하였다고 한다.

그 후 병화에 타버려 부의 관사를 옮겨 세웠는데 오직 사문(沙門)만이 남아있는데 지금의 外大門(객사문)이라 한다.

대문을 청소할 때 지금도 장인승려를 쓰니 그럴듯한 일이다.

따라서 명주군왕의 왕궁터는 명주군 금광리(학산)의 굴산사 터이며

이곳을 지금도 王縣城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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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산사

그리고 명주군을 다스리던 군왕은 3대에서 끝났지만, 뒤를 이어 고려의 왕씨로 이곳(어단리)을 강릉김씨 왕김파가 고려 말까지 명주성의 성주로 자리매김한 흔적을 평의공파 파보에서 찾아 볼 수 있다.

王縣御壇里는 고려 우왕을 따르던 신하와 성안의 백성들이 어제단(御祭壇)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당시 상황으로 보면 고려 말 이성계가 옹립한 창왕에게 밀린 우왕이 御壇里 인근에 위치한 단경골에 은거하다 이성계가 보낸 군사에 의해 御壇里에서 시해됐다고 전해지고 있으므로 어단은 그 이전(신라시대)에 있던 것으로 보아야한다.

공양왕도 이곳 왕현에 잠시 은거하였지만, 고려 왕족의 숙청을 피신하다가 삼척 궁촌 살해재에서 시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당시 공양왕이 이곳으로 들어올 때 넘어갔다고 왕고개라고 한 것이 아니라, 이 고장 사람들이 王縣(장안리) 마을로 넘어 다니는 고개라서 왕고개라고 했다는 것이 더욱더 실증적이고 심증이가는 말이다.

그리고 피신한 고려말의 왕을 잠시 모실 수 있었던 당시 상황은 강릉김씨가 왕씨 성을 하사받아 왕씨로 이곳의 성주로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을 왕현이라 했으며, 왕고개를 넘으면 장안리(王縣)이고, 장안리(王縣)로 넘어가는 고개가 왕고개인 것이다.

명주군왕 치소(王縣城)의 실증적 자료를 자세히 살펴보자.

1. 증수 임영지 p138(명주 관아 터에 범일이 절을 짓다)라고 기록 되어있다.

이것은 1787년 맹지대 부사가 기록한 임영지에 의해 전해지고 있다.

완역 증수 임영지(강릉문화원) 1997. 12. 31. 叢話 P 138

증수 임영지 (전 강릉군수 용택성 편) 소화 88叢話(총화) P 七十七

2. 일본인들도 1920년대에 왕현성과 상장안성 및 하장안성을 기록해 놓았다.

임영문화 제4426쪽 참조

3. 굴산사터(王縣城)에서 발굴된 와당과 명주산성 와당이 강릉김씨 사적보감에 함께 기록되어 있다. 명주산성의 와당과 왕현성(왕궁)의 와당은 모양과 크 기가 비슷하나 왕현성에서 발굴된 와당이 모양이나 형태가 더 뛰어나다.

4. 왕현성 마을은 지금도 장안리라고 하며, 명주산성의 마을은 장골이라 한다.

장골은 왕궁터가 아니라 왕현성을 방어하는 명주산성으로 상장안성이라 전 해지고 있다. 이것은 王縣城을 지키는 두 개의 장안성 즉 성산면 금산리 의 상장안성과 강동면 모전리 강동초교 뒤 하장안성과 같은 맥락으로 왕현 의 방어성으로 명주군왕이 이곳에 도읍하면서 세운 성으로 보아야 한다.

(완역증수 임영지 54, 임영문화 4427쪽 참조)

5. 상장안성(명주산성)은 산 정상에 자리한 넓이가 200평정도의 좁은 평지로 사방을 감시하기 좋은 전쟁 방어성 터이지 관아를 지을 터는 아니다.

6. 생거지 모학산, 사거지 성산 이라는 사자성어가 강릉에 전해오고 있다.

즉 금산과 공제는 남대천(알천)의 하천부지로 금산은 임경당 김열 할아버지 께서 소나무를 심고 가꾸어 율곡 선생님으로 부터 호송설(칭송)을 받았으 며, 공제는 명종때 강릉부사 김첨경께서 공공사업으로 제방을 쌓아 수해를 막았다고 전하고 있다. 이곳은 조선후기까지 집을 짓거나 농사를 지을수 없 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곳은 필자의 고조부(김진형)께서 소나무를 심고 가 꾸어 오랫동안 강릉시민의 소풍장소로 유명했던 공제버덩이다.

이곳 하천부지에 어떻게 명주성(명주관아)이 있었겠는가?

8. 임영고개는 북일면(오죽헌)에서 강릉(임영)으로 넘어오는 고개 이름이다.

왕 고개는 당연히 강릉에서 王縣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강릉이 시로 승격 될 때도 명주의 도읍지였던 성덕면(구정과 학산) 즉 장안 리라 불려오던 왕현성이 명주(강릉)의 핵심 면이었으며 소재지였다.

고려 공양왕이 넘어갔다고 왕고개라고 전해오는 것은 전설일 뿐이다.

그리고 구정초교 앞 왕고개는 새로 큰길(도로)이 나면서 붙여진 고개 이름 이며, 본시 왕고개는 현 구정면사무소에서 남쪽 정면으로 보이는 앞산을 넘 어 학산으로 가는 고개이다, 아직도(2022) 그 고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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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고개

9. 구전과 지명유래를 무시할 수 없는 것 같다

장안리(王縣)로 넘어가는 고개를 王峴(왕고개)이라 하며, 어단리, 옥봉, 선 래, 군선강, 명선문, 봉화대, 금괭이, 칠성산, 왓골, 태봉(貞福阿只 공주의 태를 묻은 산), 그리고 어단천을 해자로 하는 1의 토성이 현존하고 있는 이곳 구정면 학산(굴산사 터)이 명주군왕의 관아터가 확실하다고 하겠다.

때문에 王縣城(왕궁)은 지명유래와 굴산사의 창건유래, 현존해있는 토성 등을 근거로 강릉 김씨 문중이 앞장서서 발굴해야한다.

*참고문헌 : 완역 증수임영지(강릉시문화원), 임영문화 44

천년 솔향의 토박이 소리(저자. 김동철. 성원인쇄문화사.2021.)

 

 

 

역사적 자료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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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종회 부회장 김동철

(金東哲 한림공 부승공 강릉파 41세)

 

약 력

* 강릉 성산초교 37대 교장 역임

* 2018 시현실신인상 수상

* 2021 강릉말(사투리)시 공모전 대상수상

* 한국생활문학 작품상 수상

* ()한국생활문학회 이사

* 김동명 시인 선양사업회 부회장

* 출판저서

문자지도의 이론과 실제」 「스쳐보내서는 안될 머무르지않은 이야기」 「한민족의 얼 아리랑 그리고 강릉사투리」 「천년 솔향의 토박이 소리」 「황금빛 화살」 「겐금집 맏 메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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