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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영(始煐:29세) 선조 묘지석(墓誌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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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6 10:34 조회5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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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영 묘지석 (9 x 17) 번역 및 해설 번역자 : 백동파 도정공파 김형기
 

有明朝鮮國崇祿大夫判京尹致仕奉 朝
유명조선국숭록대부판경윤치사봉 조
賀江陵金公墓誌
하강릉김공묘지
 

유명[명나라의] 조선국 숭록대부[종1품상계] 판경윤[한성판윤; 정2품관직] 봉조하[당상관 이상의 관직을 역임한 원로가 70~80세가 되면 받는 명예관직]로 치사[관직을 마침]한 강릉김공의 묘지 

嗚呼此吾 先考妣衣冠之藏也/府君諱始 

오호차오 선고비의관지장야/부군휘시 

煐字而晦/我金系江陵新羅王子周元後也 

영자이회/아김계강릉신라왕자주원후야 

오호 저는 슬프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은 의관지장일진데 / 부군[선친]은 휘[이름의 높힘말] 시영이며 자는 이회이고 / 우리 강릉 김씨는 신라왕자 주원의 후예이다 

高祖諱添慶禮曹判書/曾祖諱善餘翰苑湖 

고조휘첨경예조판서/증조휘선여한원호 

堂 贈吏曹參判祖諱得元/以工曹參議諱 

당 증이조참판조휘득원/이공조참의휘 

夢虎第五子/而爲後於參判公奉事 贈領 

몽호제오자이위후어참판공봉사 증영 

議政考諱弘權敦寧府都正 贈左贊成妣 

의정고휘홍권돈녕부도정 증좌찬성비 

韓山李氏縣令敬秀女/府君生于 肅廟甲 

한산이씨현령경수녀/부군생우 숙묘갑 

고조 휘 첨경은 예조판서이시고, 증조 휘 선여는 한원[한림원]과 호당[과거급제자중 상위권 인재 4~5명이 다시 1년간 진관사에서 사가독서하던 제도]을 역임하시었고, 증이조참판[판서아래 종2품] 조[할아버지] 휘 득원이신데 공조참의[참판아래 정3품 당상관] 휘 몽호의 다섯째 아들로서 후에 참판공[몽호]에서 나와 (선여의) 봉사[양자와 같은 말]가 되었으며, 증영의정 고[아버지] 휘 홍권은 돈녕부도정이시며, 증좌찬성[영의정아래 종1품] 비[어머니] 한산이씨는 현령[종5품] 경수의 따님이시다 / 부군[선친]은 태어나시길 숙종조 갑술년[숙종20년 1694년] 

戌九月十二日/丁酉中司馬初覆試一等/戊 

술구월십이일/정유중사마초복시일등/무 

申稱蔭仕令 上丙子擢耆科第三名外/而 

신칭음사령 상병자탁기과제삼명외/이 

典鴻山積城高城陜川潭陽光州鐵原內/而 

전홍산적성고성합천담양광주철원내/이 

갑술년 9월 12일 생이시며 / 정유년[숙종43년 1717년] 중에 사마초복시 1등으로 합격하시고, 

무신년[영조4년 1728년]에 음사발령을 받으시었고, 상[임금]께서 병자년[영조32년 1756년]에 

기과[기로시]의 제3명외로 발탁하시었다 그리고 

歷 禧陵參奉 穆陵奉事/禮賓直長/司圃 

력 희릉참봉 목릉봉사/예빈직장/사포 

別提/刑工曹正佐郞 世子翊衛司翊贊翊 

별제/형공조정좌랑 세자익위사익찬익 

衛/軍資濟用監主簿/漢城府庶尹/承旨/大司 

위/군자제용감주부/한성부서윤/승지/대사 

諫/工戶曹參議/禮曹參判/漢城府判尹/兼帶 

간/공호조참의/예조참판/한성부판윤/겸대 

知義禁都摠管/歸厚提擧間嘗 特除知申 

지의금도총관/귀후제거간상 특제지신 

事引年不膺 命屢擬工刑判未蒙 點以 

사인년불응 명루의공형판미몽 점이 

관력은 희릉(서삼릉내 중중계비 장경왕후-인종의 생모-의 능) 참봉[종9품] 목릉(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계비 인목왕후의 3합장릉) 봉사[종8품] 예빈시[예조 궁중연회담당] 직장[종7품] 사포서[호조 궁중후원 채소관리] 별제[정~종6품] 세자익위사[병조무반 세자경호부대] 익찬[정6품] 익위[정5품] 군자감 제용감[호조 속아문] 주부[종6품] 한성부[국왕직계] 서윤[종4품] 승지[정3품 당상관] 대사간[정3품 당상관] 공조 호조 참의[정3품 당상관] 예조참판[종2품] 한성부 판윤[정2품] 겸직으로 

지의금부사[정2품] (5위도총부) 도총관[정2품] 역임후에 귀후서[예조 속아문 장례담당] 제거[실무담당 정종3품] 등을 간간히 맡으셨다 (임금께서) 특별히 지신사[승지 비슷한 역할 또는 다른 이름]에 제수하였지만 나이가 많음으로해서 받지 않으셨고 (임금께서) 명하여 누차 공조 형조 판서에 의망하셨지만 받지 않으셨다 // 점이~~ 

點以(점이) ~ 

聖壽加隆覃 恩邦內屢進秩階崇祿/癸 

성수가융담 은방내루진질계숭록/계 

巳春上章乞休 特許奉 朝請/甲午八月 

사춘상장걸휴 특허봉 조청/갑오팔월 

初六日考終/于不肖任所淮陽府衙享年八 

초육일고종/우불초임소회양부아향년팔 

十一/而其年十月初十日葬/于楊州靑松面 

십일/이기년십월초십일장/우양주청송면 

金村里仙鳳山下負戌原 先妣 贈貞敬 

금촌리선봉산하부술원 선비 증정경 

성수[임금의 춘추]가 높아지면서 나라내에 은혜를 베풀어 질계[품계]가 숭록(대부)[종1품상계]에 

오르셨는데 계사년[영조49년 1773년] 봄에 글을 올려 휴직을 원하시자 (임금께서) 특별히 봉조하에 허락하시었다 / 갑오년[영조50년 1774년] 8월 초6일에 고종[아버지의 임종]하시었는데 (장소는) 불초의 임소인 회양부(현재 북한지역 강원도 회양군) 관아였으며 향년 81세이셨다 / 그리고 같은 해 10월 초에 10일장을 지냈는데 (장소는) 양주군 청송면 금촌리 선봉산 아래 부술원이었다 // 선비[돌아가신 어머니] 증정경~ 

夫人全義李氏進士從龍之女/吏曹參判止 

부인전의이씨진사종룡지녀/이조참판지 

庵公行進之曾孫/先府君二年/壬申八月十 

암공행진지증손/선부군이년/임신팔월십 

一日生/己丑三月二十七日棄不肖/于金城 

일일생/기축삼월이십칠일기불초/우금성 

縣衙壽七十八/無子取族兄始錫第三子子 

현아수칠십팔/무자취족형시석제삼자자 

선비 증정경부인 전의이씨는 진사 종룡의 따님이신데 이조참판 지암공 행진[전의이씨의 간판격 인물이며 율곡 우계 장포 등과 친구임]의 증손이시며 선부군[아버지]보다 2살 위다 / 임신년[숙종18년 1692년] 8월 11일생이시며 기축년[영조45년 1769년] 3월 27일 졸하시었는데 (장소는) 금성현(현 강원도 철원군 일대) 관아였고 수는 78세이셨다 / 아들이 없어 족형 시석의 셋째 아들을 양자로 취하셨는데 

之卽尙集/女二人長適敎理李勉修早均有 

지즉상집녀이인장적교리이면수조균유 

一女爲進士鄭東五妻/次適正字李溟運有 

일녀위진사정동오처/차적정자이명운유 

一子儒壽/尙集取士人徐命暮女/又無子以 

일자유수/상집취사인서명모녀/우무자이 

兄之子有德爲後 先妣初葬于漣川鸞鳳 

형지자유덕위후 선비초장우연천란봉 

峴先塋側/府君喪後/移奉祔于左 

현선영측/부군상후/이봉부우좌 

그 아들이 바로 (나) 상집이다 / 따님[즉 나의 누이]이 두분이시고 장녀는 교리[홍문관 정5품] 이면수<전주>에게 시집가서 일찍 죽었지만 1녀를 두었는데 진사 정동오의 처가 되었고 / 차녀는 정자[예조 한림직 정9품] 이명운<함평>에게 시집가서 1남을 두었는데 (이름이) 유수이다 / 상집은 사인[벼슬하지 않은 유학자] 서명모의 따님을 취하였는데 / 또한 아들이 없어 (생가) 형의 아들[즉 유진]에게 덕이 있어 후사로 삼았다 

선비[어머니]는 처음에 연천 난봉고개 선영 주변에 장사지냈다가 부군[아버지]상 후에 이장하여 (아버지의) 좌에 봉부[합장의 다른 말]하였다 

崇禎紀元後三乙未八月十三日不肖孤尙 

숭정기원후삼을미팔월십삼일불초고상 

集泣識燔藏 

집읍지번장 

숭정기원후 3 을미년[영조51년 1775년] 8월 13일에 불초고[부모를 여윈 아들] 상집이 울면서 쓰고 

번장[도편을 구워 뭍음]하였다 

又有三片誌石只刻姓貫官稱各埋于 壙 

우유삼편지석지각성관관칭각매우 광 

東南北三方 

동남북삼방 

또한 3편의 지석이 있는데 다만 성명 관향 관직만을 각자하여 각각 광[관을 놓기 위해 판 구덩이]의 동남북 3방에 매장하였다 

* 참고로 도정공의 비석은 졸(1735년) 하신지 31년만인 “숭정기원후 3 병술[영조42년 1766년]”에 설립하였으므로 위 판윤공의 지석과 9년의 년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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