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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가파 종댁<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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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6 10:18 조회592회 댓글0건

본문

옥가파는 20세손 교위공 중상(仲祥)을 파시조로 분파하여 1대 종손 사정공 여명(汝明) - 2대 종손 목사공 또는 괴당공 윤신(潤身) - 3대 종손 참봉증집의공 세달(世達) - 4대 종손 직장증승지공 광언(光彦)까지 독자로 내려오다가 마침내 직장증승지공이 배위 숙부인 영해이씨(寧海李氏)<부손(傅孫)의 따님> 사이에서 4남(임 함 뉴 수)과 12손을 낳으심으로써 자손이 번창하기 시작한다.

만약 파시조 1세가 아들 4형제를 낳고 또 2세 4명이 각각 4명씩을 낳고 --- 이런 식으로 자손을 보았다면 5세에 이르러 자손수가 총 256명이 된다. 자손이라는 것이 원래 삼신할머니의 뜻이지만 아무튼 자손이 많아야 그 중에서 인재가 나오는 법인데 옥가파가 5대에 걸쳐 오로지 독자로만 내려왔다는 것은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강릉김씨 조선조 문과급제자 98명 중에서 옥가파는 윤신(15번째) 몽호(夢虎) 지연(之沇) 등 총 3명의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 01468 는 조선조 전체 문과급제자 약 14,600여 명 중에서 1468번째 급제란 뜻이다.

15번째 ▷ 01468 22세손 김윤신(金潤身) (1476 成宗 07年 丙申別試 7/13)
33번째 ▷ 04554 26세손 김몽호(金夢虎) (1609 光海 01年 己酉增廣 11/33)
40번째 ▷ 05794 29세손 김지연(金之沇) (1651 孝宗 02年 辛卯式年 28/33)

본고는 옥가파 종댁의 취지에 맞게끔 5대 종손 25세손 임(銋)부터 몽상(夢祥) 귀남(貴男) 형진(亨震) 지옥(之沃)을 거쳐 30세손 정태(鼎台)까지 주로 옥가파 종댁 종손을 중심으로 <족보기재내용>를 살펴보며 그리고 강김 전체와 옥가파 전체에 중요한 사항을 부연설명할 것이다.

임(銋)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종댁        
함(金函)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여주댁        
유(鈕)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기산댁        
수(鐩)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참판댁

아들 4형제 중에서 장남 임이 종손으로 옥가파 종댁인 것은 당연하겠지만 차남 함이 옥가파 여주댁, 3남 뉴가 옥가파 기산댁으로 파명에 세거지 지명이 붙은 것에 반해서 4남 수는 옥가파 참판댁으로 참판이라는 관직명이 붙었다. 수 본인 또는 수의 후손 중에서 누군가 참판(參判)[종2품] 벼슬로 현달하여 수를 소분파 파시조로 삼아 분파한 경우이다.

옥가파 종댁 임(銋)의 다음 세대를 보면 다음과 같다.

몽상(夢祥) 26 子 임(임)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종댁        
몽현(夢賢) 26 子 임(임)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통정댁        
몽량(夢良) 26 子 임(임)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고양댁

장남 종손 몽상이 계속해서 옥가파 종댁을 이어가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차남 몽현은 이번에 옥가파 통정댁으로 통정이라는 품계명이 붙었다. 통정은 통정대부(通政大夫)이며 정3품 당상관의 품계명이다. 옥가파는 소분파 파명으로 세거지 지명이나 관직명이나 또는 품계명이나 무엇이든 자유롭게 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옥가파의 소분파 과정을 그 순서대로 번호를 매긴다는 것은 매우 지난(至難)하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과제일 것이지만 일단 4자 12손 양대의 소분파 과정을 살펴보면, 먼저 4형제가 종댁 - 1)여주댁 - 2)기산댁 - 3)참판댁으로 소분파하였으며 그리고 종댁의 다음 세대에서 다시 종댁 - 4)통정댁 - 5)고양댁 으로 소분파하였다.

몽수(夢壽) 26 子 함(함)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여주댁        
몽뢰(夢賚) 26 子 함(함)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여주댁        
몽석(夢錫) 26 子 함(함)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여주댁

둘째 함의 옥가파 여주댁은 아들 3형제가 모두 여전히 여주댁으로 소분파가 없다.

인호(仁虎) 26 子 유(뉴)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기산댁        
극호(克虎) 26 子 유(뉴)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영양댁

셋째 뉴의 옥가파 2)기산댁은 이번에 장남 인호는 기산댁의 종손으로 기산댁을 이엇고, 차남 극호는 6)영양댁으로 소분파하였다.

응호(應虎) 26 子 수(수)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참판댁        
몽호(夢虎) 26 子 수(수)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참의댁        
경호(景虎) 26 子 수(수)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회산댁        
의호(義虎) 26 子 수(수)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영월댁  

넷째 수의 옥가파 3)참판댁은 이번에 장남 응호는 참판댁의 종손으로 참판댁을 이엇고, 차남 몽호는 7)참의댁으로, 3남 경호는 8)회산댁으로, 4남 의호는 9)영월댁으로 소분파하였다. 참의(參議)는 품계 정3품 당상관의 관직명이다. 몽호 본인이거나 아니면 그 후손 중에서 참의 벼슬로 현달하여 몽호를 소분파 파시조로 삼아 분파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다음 세대까지 분파 과정을 보면 10)군수공댁 11)기장댁 12)포남댁으로 3대에 걸쳐 12댁으로 소분파한 것으로 파악된다. 옥가파는 종댁을 제외하고 총 58댁이 있다.  

임(銋)
증공조참의
[배] 증숙부인 강릉최씨 부 千齡 조 생원 世昌 증조 생원 進賢 외조 생원 인동 張繼顥

증참의공 임의 배위 숙부인 강릉최씨의 외조 인동 장계호(張繼顥)가 눈에 띤다. 앞서 나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장계호(張繼顥) 23 사위 대(臺) 필양(匹陽) 윤귀(允貴) 태사공 부정공 참판공 사월파

서 장계호
扶安人 생원

동일한 인물에 대해서 부안장씨와 인동장씨로 2개의 본관이 나오는데 결국 부안장씨는 인동장씨에서 파생했거나 아니면 나중에 다시 인동장씨로 합본된 경우일 것이다. 부정공파의 사위 인동장씨 장계호와 그의 사위 강릉최씨 최천령과 그의 사위 김임으로 인해 부정공파와 지사공파가 연결되었다.

<부정공파>    천 - 1경생 - 윤귀 - 필양 - 대 > 장계호 > 최천령 > 김임
<지사공파>    천 - 3용수 - 중상 - 여명 - 윤신 - 세달 - 광언 - 임

증조 생원 최진현(崔進賢)은 조은(釣隱) 최치운(崔致雲)[1390~1441 <1417>文]의 장남이다. 부정공 경생의 사위가 강릉어씨 어세린(於世麟), 어세린의 사위가 강릉함씨 함화(咸華), 함화의 사위가 최치운이다.

<강릉최씨>    천 - 경생 > 어세린 > 함화 > 최치운 - 진현 - 세창 - 천령 > 김임

그리고 進賢의 차남 世昌은 우리 강김의 사위이다.

최세창(崔世昌) 23 사위 곤(坤) 자장(子장) 지(지)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절도공파>    후 - 탄지 - 지 - 자장 - 곤 > 최세창 - 천령 > 김임
<지사공파>    천 - 3용수 - 중상 - 여명 - 윤신 - 세달 - 광언 - 임

최세창은 배위 강릉김씨<坤의 따님> 사이에서 5남(만령 천령 덕령 익령 팽령) 1녀(沈彦慶)를 두었는데, 전편에 나왔던 대로 4남 익령과 그리고 사위 삼척심씨 심언경의 아버지 심준(沈濬)도 우리 강김의 사위이다.

최익령(崔益齡) 24 사위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심준(沈 濬) 23 사위 보연(普淵) 자흠(子欽) 지(지) 대보공 평의공 회정공파

<지사공파>    천 - 3용수 - 중상 - 여명 - 윤신 - 세달 > 최익령
<절도공파>    후 - 탄지 - 지 - 2자장 - 곤 > 최세창 - 천령 > 김임
<절도공파>    후 - 탄지 - 지 - 3자흠 - 보연 > 심준 - 언경

좌랑공 심준은 배위 강릉김씨<普淵의 따님> 사이에서 언경(彦慶) 언량(彦良) 언광(彦光) 등 3형제를 두었는데, 아버지 준과 언경-언광 형제가 문과급제자이며 그중 언광이 가장 뛰어났다.

▷ 01691 심준(沈濬) (1489 成宗 20年 己酉式年 14/33)
▷ 02218 심언광(沈彦光) (1513 中宗 08年 癸酉式年 8/33)
▷ 02320 심언경(沈彦慶) (1516 中宗 11年 丙子別試 4/11)

강릉에 세거하는 최익령의 사위 중에 남원윤씨 문과급제자 윤반(尹泮)<1553>이 있어 조금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 윤반은 남원윤씨(南原尹氏) 김포파로서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 세거해온 문중이기 때문이다.

강릉최씨와 남원윤씨 사이에 어떻게 혼사가 이루어졌을까?

남원윤씨는 파평윤씨 8세손 윤위(尹威)가 남원백(南原伯)에 봉작되어 윤위를 시조로 삼아 파평윤씨에서 분파했으며 선대가 주로 남원 구례 당진 등지에 세거하다가 남원윤씨 6세손 황(璜)의 4남 임(臨)이 경기 고양으로 올라온 뒤 그의 아들 6형제 중 5남 지득(之得)의 아들 은(訔)이 연산조에 김포시 고촌읍 신곡리에 선영을 마련하였다고 한다. 남원윤씨는 조선조에 총 71명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했는데 대부분이 임의 직계 후손이며 특히 선조조에 12세손 민신(民新)의 아들 “5형제등과” 집안으로 유명하며 세간에서 그 동네를 “오룡골”이라 부른다.

경인(敬仁) 23 子 문취(文就) 상전(尙全) 영화(永華) 한림공 만호공 김포파        
경의(敬義) 23 子 문취(文就) 상전(尙全) 영화(永華) 한림공 지산군 김포파

<지사공파>    천 - 3용수 - 중상 - 여명 - 윤신 - 세달 > 최익령 > 尹泮  
<남원윤씨김포>    영찬 - 수균 - 황 -- 臨 -- 之得 -- 訔 -- 時傑 -- 泮  

<만호공김포파>    당 - 원봉 - 영화 - 상전 - 文就 - 1敬仁 -- 確 -- 得鍊
<지산군김포파>    당 - 원봉 - 영화 - 상전 - 문취 - 2敬義 -- 熙 -- 德秀

우리 강김 중에도 김포를 선영으로 하는 문중이 있어 혹시 문과급제자 수준에서 남원윤씨 김포파와 많은 혼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고 검색해 보니 딱 한 건이 있을 뿐 - 더군다나 김포파는 아님! - 이다. 남원윤씨는 의외로 효령대군파 등 주로 전주이씨와의 혼사가 많았다.

임의 3남 지안(之安)의 증손 정(霆)이 우리 강김의 문과급제자 사위이며 그리고 그의 조부 혜(譓) 그리고 아들 강원(剛元)과 손자 기(祈) 등도 모두 문과급제자이다.

▷ 02028 윤정(尹霆) (1504 燕山 10年 甲子再別 18/19)
윤정(尹霆) 24 사위 명철(命哲) 기(琦) 자형(自亨) 한림공 판관공 인제파

함(金函)
[배] 파평윤씨 부 億齡

유(鈕뉴)
[배] 안동이씨 부 교수 世蕃

수(鐩)
1519년 중중 정덕 기묘생 將仕郞 朝散大夫 軍資監主簿
1590년 선조 경인졸 贈吏曹參判
[묘] 묘표 6대손 衡鎭식
[배] 증정부인 강릉최씨 부 사과 賢錫 조 浦 증조 사정 繼孫

장사랑[종9품] 조산대부[정4품상계] 군자감주부[종6품] 등의 품관직을 역임하였는데 나중에 이조참판[종2품]이 추증되었다. 배위 증정부인 강릉최씨의 부 현석은 필달계[경주계] 제학공파 19세손이다.

앞서 증승지공 광언의 배위 숙부인 영해이씨의 조부 從元의 형 仲元이 우리 강김의 사위임을 알았었다.

광언(光彦)
자 士豪 종사랑 예빈시직장 증승지
[묘] 묘표 7대손 衡鎭서
[배] 숙부인 寧海李氏 부 정랑 傅孫(부손) 조 훈도 從元 증조 사정 良茂 외조 연일 鄭錘

이중원(李仲元) 22 사위 존선(存善) 예(예) 탄지(坦之) 대보공 군사공 옥계파

서 이중원
부 감찰
여 崔世淸 朴承休

영해이씨 이중원의 사위가 강릉최씨 최세청(崔世淸)인데 세청도 제학공파이며 현석의 4촌형이다. 계손의 장남이 한(瀚)이고 한의 장남이 세청이며 계손의 차남 포(浦)의 장남이 현석이다. 이를 강릉최씨 제학공파 족보로 강릉김씨 사위를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제학공파>    湑 - 3得濡 > 김자흠
<제학공파>    서 - 4天濡 - 繼孫 - 1瀚 - 世淸
<제학공파>    서 - 4천유 - 계손 - 2浦 - 賢錫 > 김수
<영해이씨>    을년 - 장밀 - 양무 - 1중원 > 최세청
<영해이씨>    을년 - 장밀 - 양무 - 2종원 - 부손 > 김광언 - 수


숙간공 백동파 5방 도정공파 38세손 鎣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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