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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가파 종댁<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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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6 10:17 조회3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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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봉증집의공(參奉贈執義公) 세달은 숙인 안동권씨<현감 永中의 따님> 사이에서 1남3녀를 낳으셨다. 우리 족보에는 종댁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독자로 이어져 왔다는 이유로 해서 다음과 같이 (종댁) 부분을 삭제하고 다음 세대에서 종댁을 사용하면 이해하기가 더 편할 듯하다.

광언(光彦) 24 子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장진문(張振文) 24 사위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김이려(金以礪) 24 사위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최익령(崔益齡) 24 사위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임(임)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종댁        
함(함)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여주댁        
유(뉴)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기산댁        
수(수)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참판댁

광언(光彦)
자 士豪 從仕郞 禮貧時直長 贈承旨
[묘] 묘표 7대손 衡鎭서
[배] 숙부인 寧海李氏 부 정랑 傳孫(전손) 조 훈도 從元 증조 사정 良茂 외조 연일 鄭錘

광언은 자가 사호이며 종사랑[정9품]으로 출사해서 예빈시 직장[종7품]까지 벼슬을 역임했는데 나중에 후손들의 영달로 승지[정3품 당상]로 추증되었다. 따라서 처는 숙부인(淑夫人)이다.

외조 연일정씨 정추(鄭錘)의 장인이 강릉최씨 최치우(崔致雨)이고 동서가 강릉박씨 박시형(朴始亨)이다. 최치운의 동생 최치우의 아들 효원 그리고 박시형의 아버지 박중신이 우리 강김의 사위들이다.

존선(存善) 21 子 예(예) 탄지(坦之) 우(珝) 대보공 군사공 옥계파        
박중신(朴仲信) 21 사위 예(예) 탄지(坦之) 우(珝) 대보공 군사공 옥계파

최효원(崔孝元) 22 사위 자장(子장) 지(지) 탄지(坦之)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강김사위>    탄지 - 2예 > 박중신 - 시형
<강김사위>    탄지 - 3지 - 2자장 > 최효원
<강최사위>    최치우 > 정추 > 이부손 > 김광언
<강최사위>    최치우 > 박시형

배위 영해이씨는 연동(延東)을 시조로 하여 전주이씨에서 분파된 성씨라고 하며 이칭으로 영덕이씨라고도 한다. 장인 이름이 우리 족보에는 전손(傳孫)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문과방목 등 여러 문헌에는 부손(傅孫)으로 되어 있으니 부손이 맞을 것이다.

전(傳)자와 부(傅)자는 대표적인 전사오기 중의 하나이다. 더 황당무계한 경우는 예를 들어 김천의 장인 강릉최씨 최추(崔湫)는 일부 문헌에서 최옥화(崔沃火)로 기재되기도 하는데, 추(湫)자를 두 글자로 생각하고 옥(沃)자와 화(火)자로 본 것이다.

영해이씨는 조선조에 총 6명의 문과방목을 남겼는데, 이부손은 영해이씨 전체 문과급제자 중에서 2번째 문과급제자이며 그의 三寸 이중원(李仲元)이 첫 번째이다. 부손의 曾孫 오와 玄孫 상빈-상혐 형제가 문과급제자이니까 영해이씨 문과급제자 총 6명 중에서 5명이 이양무(李良茂)의 직계후손이다. 이양무는 강릉최씨 최안봉(崔安鳳)의 사위인데, 최안봉은 최치우의 숙부이다.

<영해이씨>    장밀 - 양무 - 종원 - 부손 > 김광언

강릉에 영해이씨 <二世六孝之閭>가 있는데, 양무의 형제들 즉 成茂 善茂 春茂 良茂 4형제와 조카 당(堂)과 민(한자미상) 등 6명이라고 한다.

仲元 從元 등 이름의 형성자를 해석하면 형제들이 대략 4~5명 정도 있었을 것이다. 첫째가 伯元[또는 孟元], 둘째가 仲元, 셋째가 叔元 - 叔 仲 순인 경우도 있다 - 그리고 넷째와 다섯째는 보통 季元이거나 從元이며 또는 그 역이다. 李良茂의 차남 또는 3남으로 보이는 李仲元은 우리 강김의 재실 사위이다.  

이겸(爾兼) 22 子 존선(存善) 예(예) 탄지(坦之) 대보공 군사공 옥계파  
이중원(李仲元) 22 사위 존선(存善) 예(예) 탄지(坦之) 대보공 군사공 옥계파        

이겸
자 世珍 호 門巖 1433년 세종 계축생 생원 不仕
如江鄕同志 十六人 創設 金蘭半月會 有盟約五章 大司憲 睡憲 崔公應賢作序文
[배]咸從魚氏 부 첨사 宗顯 부 부윤 世麟 증조 문 판서 邦寶

생원공 이겸은 사마시에 합격하였지만 출사하지 않고 강릉 고향 동지 16인과 더불어 <금란반월회>를 창설하고 맹약5장을 만들었는데, 대사헌 수헌 최응현이 서문을 작성했다.

배위 함종어씨의 조부 세린(世麟)은 사실상 함종어씨가 아니라 앞서 옥가파의 파시조 중상의 백부 부정공 경생의 사위이며 강릉어씨의 시조인 어세린(於世麟)이다. 어세린의 사위가 강릉함씨 함화(咸華)이고, 함화의 사위가 강릉최씨 최치운(崔致雲)이다. 강릉어씨는 어세린을 시조로 삼아 함종어씨에서 분파했는데 그 과정에서 성씨 마저도 어(魚)에서 어(於)로 바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릉어씨>    방보 - 세린 - 종현 > 김이겸
<강릉김씨>    김경생 > 어세린 - 종현 > 김이겸
<강함강최>    김경생 > 어세린 > 함화 > 최치운

서 이중원
부 감찰
여 崔世淸 朴承休

사헌부 감찰[정6품] - 오늘날로 치면 검사장급 - 을 지낸 이중원은 딸 2명을 낳아 최세청 박승휴 등의 사위를 보았다. 사위의 본관이 미상이나 보나마나 모두 강릉일 것이다.

우리 강김 재실 사위 영해이씨 이중원은 초실 장인이 서산류씨 유방경(柳方敬)인데, 만약 초실 서산류씨 소생의 자녀들이 있다면 우리 강릉김씨 소생의 자녀들과 이복 형제남매가 될 것이다.

다음은 사위들을 알아본다.

광언(光彦) 24 子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장진문(張振文) 24 사위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김이려(金以礪) 24 사위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최익령(崔益齡) 24 사위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서 張振文
인동인 진사 부 사맹 哲堅 조 동부령 智 증조 판사재감사 洪壽 외조 능직 양성 李著
o 宜人 以烈行 中宗朝 命旌閭
子 張忠元 參奉 卷系
子張昊 號太虛 娶習讀 講湖海亭 于鏡浦內湖西岡
傳于(婿)太虛 因傳于姪壻芝峯公 並付田宅 以香火至今尊爵 墓湖海亭後麓

o 의인[6품 문무관처] (강릉김씨)는 열행으로 중종조에 정려를 받았다.
아들은 참봉 충원이고 계자를 들였는데
계자 장호는 호가 태허이며 습독(벼슬 관리의) 따님을 취하여 경포 내호 서쪽 언덕에 호해정에서 강의했다. 계자 태허에게 승전되고 이어서 조카사위 지봉공에게 승전되었는데 밭과 집이 모두 부쳐졌다. 이로써 지금까지 향화(香火)와 존작(尊爵)을 올리는데, 묘는 호해정 후록에 있다.

장호는 무후(無后) 무사(無嗣)하여 호해정<태허정의 후신>을 포함하여 그의 재산이 조카사위 지봉공(=金夢虎) - 芝峰 李粹光<전주>이 아님 - 에게 주어졌고 김몽호가 장호의 봉사손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인동장씨 장진문 - 장충원 - 장호로 이어지는 가계와 강릉김씨 김몽호의 관계를 추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장진문의 직계후손 세대에서도 강릉김씨와 인동장씨 사이에 서너 건의 혼사가 이루어지는데 우리 강김 족보에는 결정적인 오류가 있어 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강릉김씨 참봉공 세달(世達)의 사위 인동장씨 진사 장진문(張振文)의 가계를 보면 먼저 외조 양성이씨 이저(李著)가 눈에 띠는데 앞서 나왔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광헌(光軒) 24 子 반석(盤石) 지(지) 필양(匹陽) 태사공 부정공파

광헌(光軒)
[배]강릉최씨 부 현감 世蕃 조 생원 進賢 증조 이참 釣隱 致雲 외조 宗廟署丞 陽城 李承著

* 외조 양성 李承著는 李著의 오기

양성이씨 종묘서승 이저(李著)에게는 강릉최씨 현감 최세번(崔世蕃)과 인동장씨 진사 장진문(張振文) 등 적어도 2명 이상의 사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김 사위 장진문은 인동장씨 대종중(大宗中) 중의 하나인 태상경공파[일명 京派] - 태상시는 조선에서 봉상시로 개칭됨 - 의 파시조 장백(張伯)<13세손>의 4대 종손(宗孫)이다.  

인동장씨 태상경공파는 백(伯) - 홍수(洪壽) - 지(智) - 철견(哲堅)까지 독자로 이어지다가 철견이 양성이씨<著의 따님>에게 장가들어 아들 3형제(振文 孝文 季文)를 낳고, 진문은 다시 독자 충원(忠元)을 낳는데 충원<배위 미상>은 무후하여 4촌 봉정(鳳禎)<계문의 장남>의 장남 호(昊)를 양자로 들여 대를 잇는다.

철견의 3남 계문은 아들 3형제(鳳禎 麒禎 富禎)를 낳고, 장남 봉정은 아들 형제(昊<出系> 旻)를 낳고, 차남 기정은 아들 4형제(晤 晙 晩 喚)를 낳고, 3남 부정은 아들 3형제(昕 暻 曙)를 낳는다. 6대 종손 호는 또 아들이 없어 종통으로 6촌동생<사실상 친동생> 민의 아들 우한(遇漢)<사실상 조카>을 7대 종손으로 삼아 종가를 잇는다.

이중 장계문과 張晩<기정의 3남>은 문과급제자이다. 인동장씨 중에서 가장 유명한 3명을 뽑으라면 첫째가 장희빈(=玉貞)이고 둘째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 - 퇴계의 제자 - 이고 셋째가 바로 장만(張晩) - 최명길의 장인 - 일 것이다. 따라서 김몽호(1557~1637)와 최명길(1586~1647)은 6촌 동서지간이다.

우리 족보에 보면 이중에서 장기정(張麒禎)<계문의 차남>과 그리고 종손 장호(張昊)가 강김의 사위이며 그리고 장호의 동생 장민(張旻)의 사위가 바로 김몽호이다.

장기정(張麒禎) 24 사위 세경(世卿) 곤(坤) 자장(子장)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장기정
인동인 부 舍人 季文
자 張旻 증참판 張昊 別檢

*** 장기정의 아들은 장호가 아니라, 오 준 만 환 4형제이다.

장호(張 昊) 26 사위 계운(繼雲) 광국(光國) 세남(世南) 대보공 평의공 회정공파    

서 장호
인동인 別檢 부 麒禎

*** 장호의 父는 기정이 아니라 鳳禎이다.

몽호(夢虎) 26 子 수(수) 광언(光彦) 세달(世達) 옥가파 참의댁

몽호
[배]숙부인 인동장씨 부 증참의 旻 조 직장 鳳禎 증조 사인 季文 외조 선무랑 원주 邊沆

* 몽호의 배위 인동장씨 가계를 보면 정확하며 위 장기정 및 장호의 기재내용은 오류임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배위 인동장씨가 여러 문헌에 장호(張昊)의 따님으로 기재된 곳이 많다.

그리고 장기정(張麒禎)의 3남 장만(張晩)은 문과급제자이니까 그의 문과방목에서 外祖를 확인할 수 있는데, 여기에는 배천[白川]趙氏<光琛의 따님>으로 기재되어 있어, 우리 족보에 따른 사위 장기정의 배위 강릉김씨의 위치는 과연 어떠한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인동장씨 족보에 장기정에게는 정실 배천조씨 소생으로 4남3녀와 서출(庶出) 2남(晥 曛) 2녀(鄭民秀 鄭如麟)가 있다고 기재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우리 강릉김씨<世卿의 따님> 할머니가 과연 첩(妾)이었단 말인가? 강릉김씨가 장기정의 첩이 되는 경우라면 이 강릉김씨는 세경의 서녀(庶女)인 경우이다.

세경(世卿) 23 子 곤(坤) 자장(子장) 지(지)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수고(守固) 24 子 세경(世卿) 곤(坤) 자장(子장)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이공로(李公櫓) 24 사위 세경(世卿) 곤(坤) 자장(子장)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신세린(辛世麟) 24 사위 세경(世卿) 곤(坤) 자장(子장)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김윤찬(金允粲) 24 사위 세경(世卿) 곤(坤) 자장(子장)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장기정(張麒禎) 24 사위 세경(世卿) 곤(坤) 자장(子장)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세경
1454년 단종 갑술생 참봉
[배] 안동권씨 부 참봉 悚 조 감사 繪 증조 판서 崇禮 외조 군수 삼척 沈山甫

참봉공 세경은 1남 4녀를 낳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장기정은 막내사위다. 그렇지만 과연 누가 서서(庶壻)인지는 알 수가 없다.

안동권씨 권송(權悚)은 매우 낯익은 이름이다. 권송의 인적사항을 다시 본다.

권송의 부인은 삼척심씨 심산보(沈山甫)의 딸이다. 자식은 3남 4녀를 낳았다. 아들은 권진(權璡), 권수(權璲), 권연(權璉) 등 삼형제이고, 딸들은 김세훈(金世勳)<강릉>, 전성명(全性命)<정선>, 이옹(李蓊)<嘉山>, 김세경(金世卿)<강릉> 등에게 시집갔다.

사위 4명 중에서 2명이 강김이다.

세훈(世勳) 23 子 대(臺) 필양(匹陽) 윤귀(允貴) 태사공 부정공 참판공 사월파
세경(世卿) 23 子 곤(坤) 자장(子장) 지(지)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앞서 장진문(張振文) 항목에서 아들이 독자 충원(忠元)이고 충원은 아들이 없어 4촌동생의 두 아들(昊 旻) 중에서 장남 호(昊)를 양자로 들여 인동장씨 태상경공파의 대종손(大宗孫)을 이어갔는데, 호는 정실 강릉김씨<繼雲의 따님> 에게 또 아들이 없어 친동생 민(旻)의 아들, 즉 조카 우한(遇漢)을 차종손으로 삼았으며 그리고 이 와중에서 정호의 강릉 경포대 정자 호해정(湖海亭)이 - 처남도 없었던 관계로 그리고 종가가 경(京)이었던 관계로 - 강릉에 세거하던 동생의 사위 지봉 김몽호에게 전승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장진문과 관련된 인동장씨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진사공파조(進士公派祖)인 진문(振文)은 1469년에 태어나 - 연산군의 폭정하에<필자주> - 사마시(司馬試)에 급제(及第) - 1501년<필자주> - 하여 신방진사(新榜進士)에 재임중에 목수노자(木手奴子) 즉 노복(奴僕)을 바치지 않았다는 사건(事件)으로 인(因)하여 강릉(江陵)에 가다가 중도(中道)에서 피화(被禍)로 사망(死亡)하니 33세 이였으며 강릉의 경포호(鏡浦湖) 북쪽 언덕의 호해정(湖海亭 : 明宗 朝의 張昊가 創建한 太虛亭<장호의 태허정>) 윗 쪽에 안장(安葬)하였다.

이 호해정과 관련된 여러 문헌의 설명은 대략 다음과 같다.

강원도 강릉시 저동 433번지에 있는 호해정(湖海亭)은 본래 조선 명종 때 장호(張昊)가 자신의 호를 따서 태허정(太虛亭)이라고 이름붙인 정자를 지어 사위 김몽호(金夢虎)에게 주었던 곳이라고 한다. 그 후 김창흡(金昌翕)이 이곳에 약 1년 동안 머물면서 학문을 가르치자 신성하(辛聖河)가 김창흡을 위하여 초가를 짓고 거처하였다고 한다. 이 초가가 불에 타 버리자, 1754년(영조 30년)에 신정복(辛正復)이 강원도 강릉시 죽헌동에 있던 자기 집 별당인 안포당을 헐어 이곳에 옮겨 짓고 호해정(湖海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사위 김몽호는 질서 김몽호의 오기임

서 김이려(金以礪)
<미기재>

서 최익령(崔益齡)
강릉인 생원 왕자사부 부 생원 世昌 조 생원 進賢 증조 이참 致雲 외조 주부 강릉 金坤

숙간공 백동파 5방 도정공파 38세손 鎣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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