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시간여행
뿌리시간여행

옥가파 종댁<1>

페이지 정보

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6 10:13 조회501회 댓글0건

본문

옥가파(玉街派) 종댁[宗宅]이라 함은 정확하게 우리 강릉김씨 5세손 장남 영진 대내마[제1파] 후손 중에서 15세손 태사공 영(英)의 후손 중에서 19세손 지사공 용수(龍壽)의 차남 지사공 중상(仲祥)을 분파시조로 하여 강릉시 옥가에 세거했던 옥가파(玉街派) 중에서 장남의 장남으로 이어져 온 종가집을 말한다.

그러나 우리의 인터넷 족보의 파명 표기는 중상을 모안파로 표기함으로써 약간의 오류가 있다.

용수(龍壽) 19 子 천(천) 부(富) 정(貞) 태사공 지사공 모안파        
중보(仲寶) 20 子 용수(龍壽) 천(천) 부(富) 태사공 지사공 모안파        
중상(仲祥) 20 子 용수(龍壽) 천(천) 부(富) 태사공 지사공 모안파

옥가파 또는 옥가파 종댁이란 파명 표기는 중상의 손자 괴당공 윤신(潤身)부터 나타나는데, 중상 - 여명 - 윤신 - 세달 - 광언에 이르기까지 5대가 독자(獨子)로 이어져 왔고 광언이 비로서 아들 4형제를 둠으로써 그 후손이 번창하는데 장남 임을 종댁[宗宅]으로 하여 서자(庶子)들 - 여기서는 장자(長子)이 아닌 여러 동생들을 아울러 부르는 표현 - 즉 차남이하 후손들이 여러 댁[宅]으로 분파된다는 점에서 파명 표기에 또 약간의 오류가 있다. 물론 윤신이 문과급제하고 높은 벼슬로 크게 현달했다는 점에서 괴당공을 강조하여 분파시조로 삼고 싶은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독자로 이어져 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보학적 관점에서 어긋난다고 할 것이다.

여명(汝明) 21 子 중상(仲祥) 용수(龍壽) 천(천) 태사공 지사공 모안파
윤신(潤身) 22 子 여명(汝明) 중상(仲祥) 용수(龍壽) 옥가파 종댁
세달(世達) 23 子 윤신(潤身) 여명(汝明) 중상(仲祥) 옥가파 종댁        
광언(光彦) 24 子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옥가파 종댁        
임(임)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종댁

보학적 관점에서 이를 바로 잡으면 다음과 같으며 종댁이란 표기는 비로서 분파되기 시작하는 장자 임부터 쓰는 것이 분파과정을 이해하기도 쉽고 또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중상(仲祥) 20 子 용수(龍壽) 천(천) 부(富) 태사공 지사공 옥가파
여명(汝明) 21 子 중상(仲祥) 용수(龍壽) 천(천) 태사공 지사공 옥가파
윤신(潤身) 22 子 여명(汝明) 중상(仲祥) 용수(龍壽) 태사공 지사공 옥가파  
세달(世達) 23 子 윤신(潤身) 여명(汝明) 중상(仲祥) 태사공 지사공 옥가파        
광언(光彦) 24 子 세달(世達) 윤신(潤身) 여명(汝明) 태사공 지사공 옥가파        
임(임) 25 子 광언(光彦) 세달(世達) 윤신(潤身) 옥가파 종댁

* 옥가파 분파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옥가파 대기댁의 한 후손이 운영하는 카페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제목 : 옥가파의 분파시조부터 현재까지
http://blog.daum.net/gleam0/7088638


18세손 천(蕆)의 아들 3형제의 후손들 중에서 대파(大派)를 중심으로 본다면 부정공파와 지사공파 문중은 전체 강김 중에서 “한지붕 세가족 +1”으로 표현할 수 있다.

1지(지) 22 子 필양(匹陽) 윤귀(允貴) 경생(慶生) 태사공 부정공파
2대(臺) 22 子 필양(匹陽) 윤귀(允貴) 경생(慶生) 태사공 부정공 참판공 사월파
3윤신(潤身) 22 子 여명(汝明) 중상(仲祥) 용수(龍壽) (태사공 지사공) 옥가파
득원(得元) 27 子 몽호(夢虎) 수(수) 광언(光彦) 옥가파 참의댁
+1득원(得元) 27 系子 선여(善餘) 첨경(添慶) 충정(忠貞) 한림공 숙간공 백동파

본고는 앞서 게재했던 <제목: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 노암파>를 보충하며 또 직계 선조들의 위업을 이해하고 아울러 우리 강김 족보의 전사오기를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필자의 종통은 숙간공 백동파 38세손인데 혈통인 옥가파 참의댁에 대해 아련한 애정을 갖고 있다.

15세 영(英)
1190년 고려 명종 경술생 호장
[배] 인천이씨 부 평장사 문충공 壽 조 평장사 預 외조 시중 崔惟善

태사공 영(英)의 배위 인천이씨(仁川李氏)는 경원이씨(慶源李氏) 또는 인주이씨(仁州李氏)로도 이칭되는데, 보학에서는 흔히 이자겸(李資謙)[~음1126.12월]의 집안으로 대변되며 고려 초중기 왕권을 능가하는 권력을 행사했던 최고의 귀족가문 중의 하나였다. 태사공의 장인 문충공 이공수(李公壽) - 초명은 壽 - 는 이자겸과 6촌 형제지간이다.

**인천이씨 2세손 한
한(翰) - 1자연(子淵) - 6호(顥) - 1자겸(資謙)  
한(翰) - 2자상(子祥) - 1예(預) - 공수(公壽) - 1지저(之氐)[1092~1142]의 가계도 참조.

그런데 문제는 인천이씨 족보 인물설명은 물론이고 여러 문헌에 이공수[~1137]는 해주최씨 최유선의 외손자로 기재되어 있어 우리 족보의 기재와 다르다. 즉 처조부 이예의 장인이 최유선[~1075]이라는 것이다. 다만 예와 공수 부자의 배위가 미상이라 현재로선 무엇이 맞는지 결단하기가 어렵다.

장인 이공수의 졸년(~1137)과 그 아들이며 김영의 처남이 되는 이지저의 생년(1092)과 김영의 생년(1190)을 비교해 보면 무려 100년의 차이가 나므로 우리 족보의 생년기록은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태사공의 차남 정(貞)이 고종10년(1223)에 사마등제했다는 기록에서 이른 나이인 20세에 등제했다고 치면 1203년생 정도인데 아버지와 차남의 나이가 13년 밖에 되지 않는다. 따라서 태사공의 생년으로 기재된 1190년은 아마도 어떤 관직에 임명된 년도이거나 아니면 졸년이 아닐까 한다.

인천이씨의 시조 이허겸(李許謙)의 사위가 안산김씨 김은부(金殷傅)이며, 김은부[~1017]는 고려 8대 현종(顯宗)의 장인이다. 즉 인천이씨는 고려 왕실의 처외가로써 권력에 접근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강릉김씨는 인천이씨의 사돈가 안산김씨(安山金氏)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는데, 안산김씨는 강릉김씨 시조 주원(周元)의 동생 내흥(內興)의 12세손 긍필(兢弼)을 시조로 하여 득관한 성씨이며 긍필의 아들이 은부이다. 즉 안산김씨 김은부는 강릉김씨 세수로 치면 13세손인 셈이다.

<강릉김씨>    수문 -   석 - 희유 -    영
<안산김씨>    긍필 - 은부 - 충찬 - 원광 - 경보
<인천이씨>    허겸 -   한 - 자상 -   예 - 공수 > 김영

세수와 개인의 생졸년대가 반드시 일정한 것은 아니지만 형제간 파생인 강릉김씨와 안산김씨, 그리고 안산김씨의 사돈 인천이씨의 항렬을 비교하면 강릉김씨 김영은 인천이씨 4세손에 해당하며 처조부 이예의 항렬인데 손서의 위치에 있다.

번외의 논제이지만 태사공 김영의 처가 인천이씨 쪽에서 나중에 분파했던 양산이씨 이징옥 계열을 인천이씨 태강공파로 합본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던데, 필자가 확인한 것 중에서 강릉김씨와 양산이씨<인천이씨>의 혼사가 또 있다.

부(부) 21 子 양남(揚南) 추(錘) 광을(光乙) 한림공 부승공파

子 부(坿) ◁  
府丞 行廣興倉丞
[配]梁山李氏 父 梁山府院君 澄石 조 지중추원사 李全生

양산부원군 이징석은 이징옥의 형이다. 부승공 부의 아들 의형은 문과급제자인데 그의 어떤 문과방목에도 외조에 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다.

▷ 01352 김의형(金義亨) (1470 成宗 01年 庚寅別試 2/16)

【전자】  선교(宣敎)
【 자 】  공건(公健)
【 부 】  김부(金坿)
【 조 】  김양남(金揚南)
【 증 】  김추(金錘)
【처부】  이석징(李石澄)(梁山)  
【직력】  부사(府使) 임오원진(壬午員進)
【본관】  강릉(江陵)
【거주】  경(京)

강릉김씨 문과급제자 김의형(金義亨)의 외조(外祖)는 어느 방목(榜目)에도 나와 있지 않으며 《氏族源流》나 《百氏通譜》의 강릉김씨(江陵金氏)편에도 관련 기사가 없다. 한편 의형의 처부(妻父)에 관해서 방목(榜目) 중에서는 단지《國朝文科榜目》에만 그 이름이 나오는데 그것이 이징석이 아니라 이석징(李石澄)이며 《百氏通譜》에도 역시 그렇게 되어 있다. 그리고 《百氏通譜》에 의하면 그는 양산리씨(梁山李氏)이다.

사마방목은 행권을 바탕으로 8고조도 등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에 예조에서 작성되는데 당시 김의형 집안에서 이징옥과 관련된 핍박을 우려해 외조에 양산이씨 이징석을 고의로 누락했거나 아니면 이석징으로 변조하거나 아무튼 화를 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의형의 처부는 사실상 신계조(辛繼祖)(靈山)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시 이징옥과 관련된 조정의 핍박과 해당 집안의 우려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다.  

*** 태사공 영의 생년 그리고 장인 및 처외조 문제는 계속 찾아서 고증해야 할 문제이다.

숙간공 백동파 5방 도정공파 38세손 鎣起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