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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 노암파 - 金文起회장 가문<8-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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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6 10:11 조회56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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部將公 光輻은 삼척심씨<希佺의 따님> 사이에서 아들 3형제를 낳으셨는데 장남 침(諃)은 참봉[종9품]이고 삼남 흔(訢)은 副奉事[정9품]를 지냈다는 기록만 있을 뿐 심지어 배위기록도 없다. 차남 보진재공 담(譚)의 기록을 살펴본다.

침(諃) 25 子 광복(光福) 반석(盤石) 지(지) 태사공 부정공파        
담(譚) 25 子 광복(光福) 반석(盤石) 지(지)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흔(訢) 25 子 광복(光福) 반석(盤石) 지(지) 태사공 부정공 봉사공파

* 침(諃) 과 흔(訢)도 한자 변환할 것

담(譚)
자 譚之 호 葆眞齋
1522년 중종 임오생 상호군
1605년 선조 을사 9월 초10일졸
[배]전주최씨 부 첨지 舜齡 조 감찰 孝良 증조 문 군수 承靖 좌찬성 敬節公 士康 현손 외조 참봉 洪達臣

上護軍[병조 5위 정3품하계 무관]을 지낸 담(譚)의 생졸년대(1522~1605)를 보면 무려 84세 장수를 누렸는데 생애가 임진왜란(1592~98) 시기와 겹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와중에 형과 아우의 처가 등 세부기록이 누락된 것으로 보인다.

배위 전주최씨는 경절공 최사강(1385~1443)의 현손이라고 했으므로 가문의 선계가 아주 분명하다. 전주최씨 문열공파 9세손 최사강 집안은 조선초에 왕실과의 혼사로 현귀(顯貴)해짐으로써 명문으로 부상한 가문중의 하나였다. 최사강의 장녀가 태종과 신빈 신씨(辛) 소생의 장남 함녕군에게 시집가고, 손녀<장남 承寧의 딸>가 세종의 4남 임영대군에게 시집가고, 다시 차녀가 세종의 6남 금성대군에게 시집감으로써 왕실과 3번의 혼사를 맺은 최사강은 임금 특희 세종의 두터운 총애를 받았다. 집안에선 친자매사이가 시댁에선 시숙모와 질부가 되었고 또 집안에선 고모와 조카사이인데 시댁에선 고모가 조카의 아랫동서가 된 경우다. 처증조 承靖은 3형제 중 차남이고 동생 承宗의 후손에 인조반정의 주역 최명길(崔鳴吉)<16세손>이 있다.

전주최씨 강릉세거의 맥락을 보면 최사강의 후손 중 일부가 연산군 혼조 때 강릉으로 낙향했던 것같다. 보진재공의 장인 崔舜齡은 또한 연일정씨 鄭斗亨(1507~1571)의 후실 장인이기도 한데, 즉 김담(1522~1605)과 정두형은 동서지간이다. 강릉지방에 연일정씨 “兩世三孝”가 있는데 아버지 鄭忠元과 아들 奎亨 斗亨 형제를 가리킨다. 곧바로 아래 나오겠지만 정규형은 아들 경황의 처조부이다. 김담은 규형 두형 형제와의 관계에서 형 규형과 사돈-사장지간이고 동생 두형과는 동서지간이 된 경우다.

보진재공의 처외조 洪達臣은 삼척에 세거했던 남양홍씨로 아들은 연복(衍福)이다. 남향홍씨 쪽에서 보면 사위가 최순령이고, 외손서가 김담인 것이다.

보진재공 담은 전주최씨<舜齡의 따님> 사이에서 4남 1녀를 낳으셨다.

경명(景明) 26 子 담(譚) 광복(光福) 반석(盤石)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경서(景曙) 26 子 담(譚) 광복(光福) 반석(盤石)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경황(景滉) 26 子 담(譚) 광복(光福) 반석(盤石)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경시(景時) 26 子 담(譚) 광복(光福) 반석(盤石)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이침(李琛) 26 사위 담(譚) 광복(光福) 반석(盤石)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자 景明
僉正
[배]안동권씨 부 任 조 進壯 璉 증조 悚(송)

첨정(僉正)은 6조 속아문 등의 종4품 관직으로 正[정3품하계] 副正[종3품]의 밑이다.

배위 안동권씨의 조부 권연(權璉)이 진사장원을 했다는 기록이 우선 눈길을 끈다. 찾아보니 중종 14년(1519) 기묘(己卯) 식년시(式年試)에 生員 3등(三等) 37위(67/100)과 進士壯元을 했다. 이른바 양과급제이다. 사마시에는 양과급제자가 보통 서너명 나오기 때문에 생원과 진사가 반드시 100명씩 채우는 경우는 드물다. 이때 생원장원 이원휘(李元徽)(光山)는 곧바로 같은 해 식년시에 문과급제를 했는데, 권연은 진사장원이면서도 문과급제 기록이 없으니 무슨 사연이 있었으리라. 소과 장원을 하고도 대과에 급제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사실상 의도적으로 급제하지 않은 경우라 할 것이다.

광화문에 문이 3개 있는데, 가운데 정문과 좌우 협문이다. 정문은 왕실사람들만, 밖에서 볼 때 우(동쪽) 협문은 문관들이, 좌(서쪽) 협문은 무관들이 드나드는 것이 관례이다. 생원은 광화문의 우협문 앞에 그리고 진사는 좌협문 앞에 성적순으로 도열하여 입궐하고 왕을 배알한 뒤 합격증서인 백패를 받는다. 양과급제인 경우 보통 성적이 좋은 쪽에 줄을 서면 되는데, 양과장원이 나오는 바람에 문제가 된 경우가 있었다. 생원과 진사들이 그 장원을 자기쪽에 줄세울려고 패싸움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조선조 최초의 사마시 양과장원은 누구였을까?  

첨정공의 처가 안동권씨는 본고 부정공 보진재공파 테마에서 이번에 두 번째로 나온 가문이며 처증조부 권송은 이미 낯익은 이름이다. 첫 번째 나온 경우를 다시 확인해 본다. 세훈은 경명의 종증조부이시다.

세훈(世勳) 23 子 대(臺) 필양(匹陽) 윤귀(允貴) 태사공 부정공 참판공 사월파

世勳
자 退翁 호 滄亭 성종 병오 사마 탁 연산 을묘 문과 력 춘방 통훈랑 사헌부감찰 관 헌납 증이판
[배]안동권씨 부 참봉 悚 부 감사 綸(륜) 증조 판전교사 崇禮 외조 문 도사 삼척 심산보

안동권씨는 숭례 - 륜 - 송 - 연 - 임 으로 내려오면서 우리 강김 부정공파 사위 2명을 보았다. 안동권씨의 간판스타 양촌 권근(權近)이 숭례의 숙부이고, 권송은 안동권씨 강릉입향조이다. 권송은 3남 4녀를 두었는데 사위로는 김세훈 말고도 全性命<정선> 李蓊<嘉山> 金世卿<강릉>이 더 있다. 우리 강김 제1파 23세손 세훈과 제2파 23세손 세경은 본가에서 38촌간인데 안동권씨 처가에서 동서지간이 되었다.

세경(世卿) 23 子 곤(坤) 자장(子장) 지(지)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자 景曙
僉知
[배] 姜氏 부 昕(흔)

첨지중추부사[정3품당상]를 줄여 첨지라고 하는데, 중추부는 국왕직계 무반으로 내금위 및 겸사복과 더불어 왕을 호위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사실상 임기가 차 체직하는 문무원로대신들에게 자문역으로 궁궐출입을 할 수 있도록 부여하는 일종의 무보직 명예직이다.

첨지공 경서의 배위는 姜氏<본관미상>이고 오로지 부명(父名)만 나와있는데, 시대적 배경을 추론하면 금천강씨가 아닐까 한다. 금천강씨는 인헌공 강감찬 장군을 시조로 진주강씨에서 분파된 가문인데 소현세자빈 민회빈 금천강씨<우의정 碩期의 따님>로 인해 인조 때 멸문지화를 당했다가 나중에 숙종 때 간신히 복권되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우리 강김 족보에서도 본관 및 친정 선계가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강양은 금천강씨 11세손이고 아들 4형제에서 또 분파되었는데 비룡은 3남이고 장남 非熊의 후손 중에 18세손 석기가 있다. 금천강씨 족보를 참조하여 경서의 배위를 복원하면 다음과 같다.

자 景曙
僉知
[배] 衿川姜氏 부 昕(흔) 조 사정 非龍 증조 한성판윤 揚 * 외조미상

자 景滉
자 子浩 호 遯菴(둔암)
1549년 명종 을유 3월1일생 참봉 첨추
1623년 인조 계해 7월1일졸
[배] 淑夫人 연일정씨 부 참봉 瀣(해) 조 교수 奎亨  증조 忠元 외조 교수 강릉 崔應福

첨추(僉樞)는 첨지의 또 다른 표현이고 숙부인[정3품당상관의 처]은 남편의 품계를 따른 봉작이다.

배위 연일정씨는 포은공(정몽주) 파의 후손이다. 포은공은 宗誠 宗本 두 아들을 두었고, 차남 종본은 세 아들 恂(순) 관(慣) 신(愼)을 두었는데 여말선초에 우리 강김 제3파 20세손 감무공 여주파의 파시조 從南과 겹사돈을 맺은바 있다.

핍(픽) 21 子 종남(從南) 추(錘) 광을(光乙) 한림공 감무공파        
정순(鄭恂) 21 사위 종남(從南) 추(錘) 광을(光乙) 한림공 감무공파        

子 愊(핍)◁
忠毅校尉 虎賁衛副司直 縣令◁
[配]延日鄭氏 父 司藝 宗本 祖 文忠公 圃隱 夢周 曾祖 侍中 日城府院君 云瓘  外祖 簽書 慶州 李廷堅◁

서 鄭 恂(정순)◁
延日人 直長 父 司藝 宗本 祖 文忠公 圃隱 夢周 曾祖 侍中 日城府院君 云瓘  外祖 慶州 李廷堅

포은공파 후손들 중에서 선조들이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화를 입자 관(慣)의 손자 도(渡)가 울진 삼척으로 낙향함으로써 후손들이 강릉지방에 세거하게 되었다. 도의 손자가 忠元이며 충원은 奎亨 箕亨 斗亨 등 세 아들을 두었는데, 보진재공의 “三世四孝”와 마찬가지로 “兩世三孝”의 집안이다. 사돈간이 모두 대효집안이다.

앞서 보진재공 편에서 말했듯이 둔암공 경황의 처조부 규형의 동생 두형은 보진재공과 동서지간이며 장인은 전주최씨 崔舜齡이다.

<전주최씨>    사강 - 승정 - 효량 - 순령 > 정두형
<전주최씨>    사강 - 승정 - 효량 - 순령 > 김담 - 경황                    
<연일정씨>    충의 - 도 - 치온 - 충원 - 규형 - 해 > 김경황

자 景時
호 東華 교수 以孝旌閭

호가 동화이며 교수를 지낸 경시는 효자로써 정려되었다.

서 李琛
전주인 主簿 부 현감 公樑
자 茂生 여 金貴男            

전주이씨 이침은 주부[종6품]를 지냈고 부가 현감 이공량이며, 강릉김씨<譚의 따님> 사이에서 1남 1녀를 낳았는데 아들은 무생<또는 茂先>이고 사위는 金貴男이다. 이 사위가 또 강릉김씨이다.

귀남(貴男) 27 子 몽상(夢祥) 임(임) 광언(光彦) 옥가파 종댁

貴男
啓功郞
[배] 安人 전주이씨 부 주부 琛 조 현감 公樑 증조 진사 翁 외조 호군 강릉 金譚

<강릉김씨>    1경생 - 윤귀 - 필명 -1지 - 반석 - 4광복 - 2담 > 이침 > 김귀남
<강릉김씨>    3용수 - 중상 - 여명 - 윤신 - 세달 - 광언 - 1임 - 몽상 - 귀남  
<전주이씨>    oo - 원계 - 3조 - 군실 - 세문 - 옹 - 3공달 - 침 > 김귀남

앞서 안동권씨 권송(權悚)에게 4명의 사위가 있었으며 인적사항을 좀더 살펴본다.

부인은 삼척심씨 심산보(沈山甫)의 딸이다. 자식은 3남 4녀를 낳았다. 아들은 권진(權璡), 권수(權璲), 권연(權璉) 등 삼형제이고, 딸들은 김세훈(金世勳)<강릉>, 전성명(全性命)<정선>, 이옹(李蓊)<嘉山>, 김세경(金世卿)<강릉> 등에게 시집갔다. 권송은 권진(權璡), 권수(權璲), 권연(權璉) 삼형제를 낳았는데, 장남인 권진은 아들이 없자 권연의 아들 권화(權和)를 양자로 맞이하였다. 권화는 율곡 이이(李珥)의 이모부이다. 권화의 아들은 오죽헌(烏竹軒) 권처균(權處均)이다.

<강릉김씨>    1경생 - 윤귀 - 필양 - 1지 - 1반석 - 4광복 - 2담 - 3경황
<삼척심씨>    공무 - 원달 - 맹은 - 산보 > 권송 - 진 - 화 - 처균
<안동권씨>    희  -  충   - 숭례 - 륜  -  송 - 진 - 화 - 처균

계공랑[종7품] 김귀남의 처증조 전주이씨 이옹(李翁)과 권송의 셋째사위 이옹(李蓊)은 동일인의 전사오기인데 다만 본관이 가산(嘉山)으로 다르다. 즉 가산이씨는 전주이씨의 어느 특정한 분파명임을 짐작케 한다.

태조 李成桂의 서형(庶兄) 李元桂[완풍대군파]의 아들 4형제 중에서 3남 완남군 조(完南君 朝)가 가산군(嘉山君)에 책봉된바 있고, 가산군의 손자 진릉군 세문(晋陵君 世門)이 이징옥의 난에서 무고의 화를 입자 치사하고 양양으로 입향하였는데 그 후로 후손들은 전주이씨에서 분파하여 가산이씨로 득관하였다고 한다. 이세문의 문과방목도 본관을 嘉山으로 적고 있다.

다만 전주이씨 선원세계 완풍대군파에 보면 진릉군 세문에게는 承祚 承福 등 두 아들이 있었다고 하며 세문의 후손 公樑은 6세손이라고만 밝히고 있어, 공량의 아버지 옹과 진릉군 세문과의 관계는 부자지간이 명확한데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세문(1400~1470) - 승복(1425~1495) 옹<1522> - 공량(1519~1580) 등 3대의 생졸년대를 비교하면 조손의 나이차가 무려 119년이다. 세문이 양양 입향후에 재취하여 낳은 아들이 옹일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옹은 반드시 1470년 이전에 태어났어야 한다. 권송의 셋째사위인 이옹은 넷째사위 김세경(1454년생)보다 연배가 위였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옹의 출생년도를 1450년 경으로 상정하고 아들 공량이 막내라고 해도 부자지간에 무려 70살 정도의 차이가 난다.

그런데 嘉山人 이옹은 중종 17년(1522)에 진사에 급제한 사마방목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무려 72세에 급제한 꼴이 되므로 권송의 사위 순으로 이옹의 나이를 상정하는데 무리가 있다. 가장 늦게 1470년생이라고 해도 52세에 급제한 것인데, 50여세의 사마급제는 종종 있었던 경우이다. 옹의 생모와 배위, 3남 공량의 배위를 찾아 우리 강김 사위 이침의 8고조도를 완성하는게 과제로 남았다.

첨추공 경황은 숙부인 안동권씨<瀣의 따님> 사이에서 2남을 낳으셨다.

한(한) 27 子 경황(景滉) 담(譚) 광복(光福)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준(埈) 27 子 경황(景滉) 담(譚) 광복(光福) 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파

한(垾)
자 叔厚 호 魯隱
1578년 선조 무인 12월 1일생 훈도
1663년 현종 계묘 9월 19일졸
[배] 삼척심씨 부 병절교위 漆壽 조 衛率 두[山+斗] 증조 좌찬성 彦慶 외조 증참의 안동 權和
[배] 강릉박씨 부 仁元 조 杞 증조 命賢 외조 강릉 崔仁俊

노은공 한의 초실 삼척심씨의 증조 좌찬성 彦慶은 검교공파 8세손으로 장인이 강릉 崔世昌이다. 아버지 준(濬)과 동생 漁村 彦光 등이 모두 조선초기 문과급제자이다. 삼척심씨는 3세손 7형제 중에서 장남 原福<현감공파> 3남 原達<절제공파> 4남 原연<검교공파> 5남 原麟<호장공파> 등으로 분파되는데, 앞서 나왔던 山甫 家甫 형제는 절제공파 5세손이다. 심언경의 아버지 심준과 조카 沈雲과 그리고 家甫의 아들 希佺은 우리 강김의 사위다.

심준(沈濬) 23 사위 보연(普淵) 자흠(子欽) 지(지) 대보공 평의공 회정공파
심운(沈雲) 25 사위 광철(光轍) 세훈(世勳) 대(臺) 태사공 부정공 참판공 사월파
심희전(沈希佺) 23 사위 곤(坤) 자장(子장) 지(지)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절제공파>    동노 - 공무 - 3원달 - 맹은 - 가보 - 희전 > 金光輻
<검교공파>    동노 - 공무 - 4원연 - 명덕 - 충보 - 문계 - 준 - 언경

<강김1파>    경생 - 윤귀 - 필양 - 1지 - 1반석 - 4광복 - 2담 - 한
<강김1파>    경생 - 윤귀 - 필양 - 2대 - 세훈 - 광철 > 심운
<강김2파>    탄지 - 지 - 2자장 - 곤 > 최세창 > 심언경
<강김2파>    탄지 - 지 - 2자장 - 곤 > 李碩珍 > 金光轍
<강김2파>    탄지 - 지 - 2자장 - 곤 > 이석진 > 朴命賢 - 杞 - 仁元 > 金垾
<강김2파>    탄지 - 지 - 2자장 - 곤 > 이석진 > 權璉 - 任 > 金景明
<강김2파>    탄지 - 지 - 2자장 - 곤 > 심희전
<강김2파>    탄지 - 지 - 3자흠 - 보연 > 심준 - 언광 - 운

노은공 한의 후실 강릉박씨<仁元의 따님>의 선계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강릉박씨는 앞서 박자검이 사위의 사위로써 우리 강김 부정공파와 인연을 맺은 바 있고, 이와 더불어 외조 강릉 崔仁俊이 崔致雲의 후손이고 어머니가 강릉박씨<公達의 따님>인데 박공달은 박자검의 증손이기 때문이다.

<강김1파>    경생 - 윤귀 - 필양 - 1지 - 1반석 - 4광복 - 2담 - 한
<강릉박씨>    김저 > 박자검 - 3중경 - 2영근 - 2승휴 - 1수량 - 1명현 - 3기 - 2인원 > 김한
<강릉박씨>    김저 > 박자검 - 2중신 - 4시행 - 공달 > 최인준 > 박인원 > 김한
<강릉최씨>    경생 > 어세린 > 함화 > 최치운 - 1진현 - 5수담 - 1인준 > 박인원 > 김한

준(埈)
자 汝厚
1592년생 1636년졸
[배]강릉최씨 부 진사 承安 조 첨추 伏龍 증조 증참의 養浩 외조 증참의 안동 權和

차남 埈의 배위 강릉최씨의 외조 안동 權和는 공교롭게도 형 垾의 처외조와 동일인이다. 형의 처외조를 다시 살펴본다.

한(垾)
[배] 삼척심씨 부 병절교위 漆壽 조 衛率 두[山+斗] 증조 좌찬성 彦慶 외조 증참의 안동 權和

즉 권화의 사위에 삼척심씨 沈漆壽와 강릉최씨 崔承安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본가에서 친형제인 한과 준은 외가에서 이종4촌 동서지간이 된 경우이고, 권화 쪽에서 보면 김한과 김준은 모두 외손자이다.

<안동권씨>    희 - 충 - 숭례 - 륜 - 송 - 진 - 화 > 심칠수 > 김한
<안동권씨>    희 - 충 - 숭례 - 륜 - 송 - 진 - 화 > 최승안 > 김준

안동권씨 쪽에서 보면 앞서 우리 강김사위가 2명 있었다.

<안동권씨>    희 - 충 - 숭례 - 륜 - 송 > 김세훈
<안동권씨>    희 - 충 - 숭례 - 륜 - 송 - 연 - 임 > 김경명

이상 우리 강김 제1파 18세손 천(蕆)부터 26세손 한(垾)까지 부정공 보진재공파 및 옥가파 그리고 제2파 선조님들의 여말선초부터 임진왜란후 기간까지 혼사관계를 살펴보았다. 강릉최씨, 삼척심씨, 강릉어씨, 강릉함씨, 강릉박씨, 연일정씨, 안동정씨, 금천강씨, 가산이씨<전주이씨>, 전주최씨, 양성이씨 등 강릉의 토성이나 속성을 형성한 씨족들과 누대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돈 또는 사돈의 사돈으로 혹은 겹사돈으로 혹은 족내혼으로 혼사를 맺어 왔음을 확인하였다.  

이러한 연구의 성과를 토대로 우리 강김 족보를 수정보완하는 것은 물론이고 우리 강김과 다른 씨족간의 혼맥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숙간공 백동파 5방 도정공파 38세손 鎣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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