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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사공 부정공 보진재공 노암파 - 金文起회장 가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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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1-03-16 09:59 조회38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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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강릉김씨 19세손 부정공 慶生은 允貴를 낳으시고, 현령공 允貴는 匹陽을 낳으셨다.

필양(匹陽)
1389년 공양왕 기사생 1438년 세종 20 무오진사 贈通訓大夫左通禮行成均生員
[배]王氏 父 縣監 지(輊)
[배]旌善李氏

필양은 거의 50세에 사마시 進士에 급제하셨는데 사후에 통훈대부[정3품하계] 좌통례 행 성균생원으로 추증된 것을 알 수 있다. 관리의 임명에는 품관직(品官職)이 일정한 규정을 준수해야 하는데 반드시 지키지 못할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흔히 행수법(行守法)이락 하여 품(品)이 높고 관직(官職)이 낮을 경우, 즉 품고직저(品高職低)의 경우 관직명 앞에 행(行)자를 쓰며 그 반대의 경우에는 수(守)자를 쓴다.

통훈대부[정3품하계]에 맞는 관직은 예를 들어 통례원 좌통례[정3품 관직]인데 필양의 경우 실제로 성균생원[무품]을 역임했기 때문에 좌통례 행 성균생원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지만 필양의 공식호칭은 (좌)통례공이다.

소과(小科)는 사마시(司馬試) 또는 생진과(生進科)라고도 부르는데 원칙적으로 4년마다 각각 100명씩만 뽑는 대단히 어려운 시험이다. 그래서 생원이나 진사만 급제하고 별다른 벼슬을 하지 않아도 특히 시골 고향에서는 대단한 양반으로 행세할 수 있었다.

추증된 이유는 필양의 직계 후손들이 문과에 급제하여 고위관직에 오르는 등 크게 현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進士로 급제하였는데 生員으로 추증되었다는 것이다. 조선초기에는 진사보다 생원이 더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생원이나 진사는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을 갖을 수 있으며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대과(大科)를 준비하면 훨씬 더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렇다고 모두가 입학하는 것은 아니었다. 지방에 거주하는 자는 한양에 경저(京邸)를 마련하는 등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성균생원(成均生員)은 그냥 생원보다 훨씬 더 품격있는 명칭이다. 예를 들어 서울대에 입학하여 체계적으로 고시를 준비하는 것과 지방에서 그냥 혼자서 독학하는 것과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국립 성균관에 대칭되는 지방의 서원(書院)은 후자를 위한 사립 교육기관이다.

필양의 배위로 기재된 ‘[배] 王氏 父 縣監 지(輊)’ 를 잘 판독해야 하는데, 여기서 왕씨는 강릉왕씨이며 강릉왕씨는 고려 초기에 왕씨로 사성(賜姓)받았다가 조선 초기에 태조의 명으로 다시 김씨로 복성(復姓)했던 우리 강릉김씨 5세손 영길[제2파]의 후손들이다. 제1파 21세손 필양의 장인 왕지(王輊)는 실제로 제2파 20세손 김지(金輊)이다. 우선 김지의 족보기록을 살펴본다.

지(輊) 20 子 탄지(坦之) 우(珝) 영흥(永興) 대보공 평의공파

지(輊)
[배] 정부인 橫城高氏 부 봉상대부 전공총랑 지청풍군사 瞻 조 子奇

지(輊)(1363~1437)는 후(珝) - 우[珝]가 아님 - 의 손자이며 탄지의 3남이다. 따라서 제1파 20세손 允貴와 제2파 20세손 輊는 門族 32촌간인데 사돈이 되었으며 그리고 양가의 아들[匹陽]과 따님[강릉김씨]는 34촌간인데 족내혼으로 부부가 되었다. 여말선초에 제2파 輊 가문의 가세가 상대적 우위에 있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강릉김씨 金輊의 강릉김씨 사위는 匹陽 말고도 필양의 6촌 汝明이 또 있다. 따라서 匹陽과 汝明은 본가에서 6촌 형제간인데 처가에서 동서지간이며 그리고 金輊의 두 딸은 본가에서 친자매지간인데 시댁(媤宅)에서는 6촌 동서지간이 되었다.

자 여명(汝明)
[배] 宜人 강릉왕씨 부 현감 輊 조 지군사 坦之 증조 판전객사사 珝 외조 전공총랑 횡성 高瞻  

자 윤신(潤身)
[배] 숙부인 강릉최씨 부 진무부위 伯淙 조 군사 雲保 외조 진사 강릉 崔雄龍  

윤신(潤身) 22 子 여명(汝明) 중상(仲祥) 용수(龍壽) 옥가파 종댁

의인(宜人)은 6품 벼슬의 문무관처에게 부여하는 봉작명이며 그리고 제사때 지방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인(孺人)은 원래 9품 벼슬의 문무관처에게 부여하는 봉작명인데 오늘날 남편이 벼슬을 하지 못했다고 해도 예의상 쓰고 있다.

그런데 우리 강릉김씨 족보에는 김지의 사위들은 기재되어 있지 않고 오로지 아들 5형제 - 그 유명한 자갱 5형제 - 만 기재되어 있어 이채로운데 동성동본의 사위들을 족보에서 삭제한 것은 아마도 원칙적으로 동성동본 금혼을 유지했던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을 입은 것 같다.

자갱(子갱) 21 子 지(지) 탄지(坦之) 우(珝) 대보공 평의공 참의공파        
자장(子장) 21 子 지(지) 탄지(坦之) 우(珝) 대보공 평의공 절도공파        
자흠(子欽) 21 子 지(지) 탄지(坦之) 우(珝) 대보공 평의공 회정공파        
자종(子종) 21 子 지(지) 탄지(坦之) 우(珝) 대보공 평의공 첨사공파        
자현(子鉉) 21 子 지(지) 탄지(坦之) 우(珝) 대보공 평의공 감찰공파

* “우(珝)”는 모두 “후(珝)”로 수정해야 함
** 자갱(子鏗)의 갱자, 자장(子鏘)의 장자, 자종(子錝)의 종자도 인터넷 한자에 있으니 교정해야 함

김지와 배위 횡성고씨<첨의 따님> 사이에 아들 5형제 외에도 일단 2명의 따님이 있었다는 것은 우리 강릉김씨 족보의 내용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그런데 위 2명의 따님 외에도 몇 명의 따님이 더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김지의 처가 횡성고씨 족보에 고첨(高瞻)의 외손들이 기재되어 있다면 나중에라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반면에 우리 강릉김씨 족보에서 일일이 찾아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자갱(子鏗) 5형제와 그리고 匹陽의 차남 대(臺)와 汝明의 아들 潤身은 조선초기 우리 강릉김씨 최초의 문과급제자들이다. 특히 자갱은 강서김씨(江西金氏)로 분적하여 강서김씨 시조가 된 김반(金泮)<1399>을 제외하면 우리 강릉김씨 조선조 최초의 문과급제자이다.

우리 강릉김씨 문과급제자들 중에서 급제순위는 1위 김자갱(金子鏗), 3위 김자흠(金子欽), 4위 김자현(金子鉉), 15위 김윤신(金潤身), 16위 김대(金臺) 등인데 국조방목에서 검색한 조선조 전체 문과급제자들 중에서 이 분들의 순위와 급제년도는 다음과 같다.

▷ 00290 김자갱(金子鏗) (1414 太宗 14年 甲午式年 26/33)
▷ 00753 김자흠(金子欽) (1444 世宗 26年 甲子式年 15/33)
▷ 00788 김자현(金子鉉) (1447 世宗 29年 丁卯式年 18/33)
▷ 01468 김윤신(金潤身) (1476 成宗 07年 丙申別試 7/13)
▷ 01492 김대(金臺) (1477 成宗 08年 丁酉式年 18/33)

조선의 과거제도는 원칙적으로 식년시를 근간으로 하는데 식년시는 4년마다 단지 33명만을 뽑는다. 장원급제는 두말할 것도 없으며 단지 여기에 들기만 해도 그야말로 대단한 신분보장이며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배] 旌善李氏

필양의 재실 정선이씨는 친정의 가계와 외조 등이 전혀 기재되지 않아 누구의 따님인지 현재로선 필자의 자력으로 확인할 수 없고 다만 정선이씨 족보에 사위 강릉김씨 필양이 기재되어 있다면 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정선이씨는 화산이씨(華山李氏)와 더불어 베트남 이왕조(李王朝) 출계의 성씨인데, 고려 군사정권 시절 정선이씨 6세손 이의민이 최충헌에게 살해되면서 가세가 몰락했으나 그후 다시 가세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고려말 공양왕 2년(1390)에 이성계 등 신군부에 반대했던 세력이 계획했던 <윤이 이초 무고사건>에서 이의민의 후손이며 12세손인 李初(1322~1390)가 연루되어 다시 몰락했다.

그리고 조선조 내내 이른바 <역적집안>으로 몰려 단 한명의 문과급제자도 배출하지 못했고 임진왜란 이후에야 비로서 고작 생원 8명과 진사 3명만을 배출했던 집안이다. 이런 정황에서 재실 정선이씨의 친정기록이 의도적으로 삭제된 것으로 보이며, 다른 경우는 재실이 아니라 측실(側室)로 보인다.

필양은 2명의 배위 사이에서 아무튼 2명의 아들(墀 臺)을 두었는데, 지와 대가 누구의 소생인지 우리 강릉김씨 족보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문과급제자인 차남 金臺의 행권(行券) 외조난에 金輊(江陵)으로 기재되어 있어 초실 강릉김씨[또는 왕씨] 소생임을 알 수 있다.

숙간공 백동파 5방 도정공파 38세손 鎣起

* 김지의 외손들인 김대와 김윤신은 외가에서 이종사촌이며 본가에서 8촌 형제간인데 처가에서 공교롭게도 다시 동서지간이 되는 이 기막힌(?) 스토리와 그리고 부정공 후손들과 다른 가문들의 의미심장한(?) 통혼관계는 다음 호에서 다루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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