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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金氏千二百年史 제1집(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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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no_profile 최고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0-12-04 14:04 조회49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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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陵金氏千二百年史」 제1집(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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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江陵金氏千二百年史」  제1집

인쇄일 : 1990년 3월 01일 인쇄

발행일 : 1990년 3월 15일 발행

발행인 : 강릉김씨대종회장 김문기

편집인 : 「江陵金氏千二百年史」 편찬위원장 김진백

편집・주필: 「江陵金氏千二百年史」 편찬위원회 김흥기

분   량 : 1016쪽

발행처 : 강원도 강릉시 임당동 88-11

         강릉김씨대종회

인쇄처 : 강원일보사 출판국



발간사 (發刊辭)



 유구(悠久)한 역사(歷史)와 빛나는 전통(傳統)으로 이어진 강릉김씨(江陵金氏)의 1200년사지(史誌)를 가졌으면 하는 것은 우리 문중(門中)의 공통(共通)된 간절(懇切)한 염원(念願)이었습니다. 그러나 종래(從來) 전(傳)하여 오는 일부기록(一部記錄)이나 설화(說話)를 그대로 수록(收錄) 집대성(集大成)하기에는 너무도 산만(散漫)하거나  그릇 전(傳)해지는 바도 적지 않았다고 보여 원전(原典)을 상고(詳考)하고 사계(斯界)의 권위(權威)있는 학자(學者)들의 치밀(緻密)한 고증(考證)을 거쳐 후대(後代)에 역사정론(歷史正論)으로 인증(認證)받을 수 있도록 최선(最善)의 노력(努力)을 기울였습니다. 워낙 장구(長久)한 세월(歲月)이고 방대(尨大)  한 자료(資料)들을 취사(取捨) 선택(選擇)하여 진실성(眞實性)과 타당성(妥當性)을 고루 갖춘 역사기록(歷史記錄)을 남긴다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과업(課業)인가를 지난 6년간의 작업을 통해 절감(切感)하였습니다.

 우리 강릉김씨의 근원(根源)을 살피면 김알지대보공(金閼智大輔公)의 16世孫인 태종무열대왕(太宗武烈大王: 新羅 제29대)의 6세손 주원공(周元公)이 시조(始祖)이십니다.

 이분은 신라 제38대 원성왕(元聖王)에게 왕위(王位)를 고사(固辭)하시고 명주(溟州:당시 칭호 北濱京-서기785년)로 옮기신 이래 후손들은 계계승승(繼繼承承) 천지만엽(千枝萬葉)으로 번성(繁盛)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그간에 끊임없이 종중(宗中)에서는 명현(名賢)과 석학 (碩學) 경세제민(經世濟民)하신 덕행(德行)과 학식(學識)이 뛰어난 위인걸사(偉人傑士)와 효자(孝子) 효부(孝婦) 등(等) 수 없이 배출(輩出)하여 왔습니다.

 이들 중 혹은 출사(出仕)하여 국가의 동량(棟樑)으로 헌신(獻身)하였고 더러는 야(野)에 묻혀 이 나라 학문(學問)과 문화창달(文化暢達)에 공헌(貢獻)하여 민족사(民族史)에 길이 빛나는 공적(功績)과 위업(偉業)을 성취(成就)해 오셨습니다. 이 모두가 우리 선현(先賢)들의 자기 수련(自記修鍊)과 우수자찬(優秀資贊)에서 이루어진 것으로써는 우리 후손들의 긍지(矜持)와자존(自尊)을 드높여 주는 행적(行蹟)이라 하겠습니다.

 중요계보(系譜)로는 고려 공양왕(恭愍王:1351~1374)조(朝)에 이부상서(吏部尙書) 이거인(李居仁)이 강릉김씨왕족도(江陵金氏王族圖)를 편찬(編纂)하여 부사(府司)에 세전(世傳)해 온 것이 있고 그 뒤 이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의 25세손인 예조판서(禮曹判書) 첨경(添慶)이 명종(明宗:1552~1568)16년에 강릉부사(江陵府使)로 도임(到任)하여 을축보(乙丑譜:1565)를 발간(發刊)한바 있습니다. 이어서 수회(數回)에 긍(亘)하여 대동보(大同譜 )및 파보(派譜)를 발간(發刊)하여 매호(每戶)에 보존(保存)하는 실정(實情)이었습니다. 그러나 계대(系代)와 행적(行蹟) 등(等)이 순한문(純漢文)으로 기록(記錄)되어 있어 후세(後世) 청소년(靑少年)들이 이해(理解)하기가 매우 어려운 형편(形便)이었습니다, 또 구전(口傳)으로 되어 오는 설화(說話)와 비명(碑銘) 등이 날로 연멸(煙滅)되어 가므로 차제(此際)에 이를 현대문(現代文)으로 엮어 보존(保存)하고 누구나 손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긴요(緊要)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마침 본인(本人)이 1984년에 제14대 대종회장(大宗會長)이 되어 평소 (平素) 염원(念願)해 오던 숭조애친(崇祖愛親)의 전통문화사상(傳統文化思想)을 계승(繼承)발전(發展)시키고 동기간(同氣間)의 친목(親睦)과 우의(友誼)를 더욱 돈독(敦篤)히 하겠다는 정신(情神)으로 시조(始祖) 주원명주군왕릉소(周元溟州郡王陵所)를 성역화(聖域化)하는 사업(事業)과 「江陵金氏千二百年史」 편찬사업(編纂事業)을 대종회(大宗會) 당면사업(當面事業)으로 설정(設定)하여 역사적(歷史的)인 양대사업(兩大事業)을 착수(着手)하게 되었습니다. 종인(宗人)중 여러 독지가(篤志家)의 희사(喜捨)와 협찬(協贊)에 힘입어 시조(始祖) 명주군왕릉소(溟州郡王陵所) 주변(周邊)을 확장정비(擴張整備)하고 재실(齋室)을 건조(建造)하여 그윽하고 정결(淨潔)하며 경건(敬虔)한 분위기(雰圍氣)가 감도는 성역(聖域)으로 가꾸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유구(悠久)한 역사(歷史)를 지닌 명주군왕릉소(溟州郡王陵所)는 우리 씨족연원(氏族淵源)의 성역(聖域)이 될뿐더러 강릉지방(江陵地方)의 유서(由緖)깊은 향토문화유적지(鄕土文化遺跡地)로 길이 잘 보존(保存)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우리의 씨족사(氏族史)인 강릉김씨1200년사는 대종회임원(大宗會任員)들과 편찬위원(編纂委員)이 힘을 합쳐 우리의 씨족사는 지방향토사(地方鄕土史)가 되며 더 나아가 민족사(民族史)의 일익(一翼)을 담당(擔當)한다는 사명의식(使命意識)을 가지고 정확(正確)하고도 진실(眞實)한 역사문헌(歷史文獻)이 될 수 있도록 최선(最善)을 다 하였습니다. 강릉김씨세보(江陵金氏世譜)를 기간(基幹)으로 각종 사기(史記)를 비롯하여 제반전적(諸般典籍)과 문헌(文獻)을 상고(詳考)하고 전국 각지에 산재(散在)되어 있는 선조(先祖)의 금석지문(金石之文)과 구전(口傳)되어 오는 설화(說話) 등을 수집(蒐集)정리하여 「江陵金氏千二百年史」를 오늘에 이르러서야 발간(發刊)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면적(內面的)으로는 아직도 보완(補完)하여야 할 사항(事項)이 많이 있겠으나 우선 그 제1집으로 엮은 것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연구(硏究)와 자료수집(資料蒐集)을 거듭하면서 보정(補正)하기로 하고 종친제위(宗親諸位)의 아낌없는 협조와 질정(叱正) 있으시기를 간망(懇望)합니다.

끝으로 본지를 편찬(編纂)함에 있어 적극(積極) 협찬(協贊)하여 주신 현종제위(賢宗諸位)와 대종회임원제위(大宗會任員諸位) 및 전국(全國) 각지(各地) 종친회장(宗親會長)을 비롯하여 편찬위원(編纂委員) 제위(諸位)에게 충심(衷心)으로 사의(謝意)를 표합니다. 특히 본지 발간을 주도(主導)하여 오신 「江陵金氏千二百年史」 편찬위원장이신 경양(敬陽) 김진백(金振伯)고문(顧問)과 불굴(不屈)의 집념(執念)으로 심혈(心血)을 경주(傾注)하여 중책(重責)을 완수(完遂)하신 주필(主筆) 흥기(興起)씨를 비롯하여 총무 동기(洞起)씨 재무 진학(振學)씨 감수 후경(厚卿)씨 교정 진방(振榜)씨와 을기(乙起)씨 서사 진황(振璜)씨 영기(永起)씨 등 실무진(實務陳)에게 심심(深甚)한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서 다시 한번 열성조(列聖祖)들의 행적(行蹟)을 더듬어 보면 학문(學問)을 즐기셨고 음덕(陰德)으로 처세(處世)하며 의리(義理)와 정의(情誼)로 일관(一貫)된 생활철학(生活哲學)을 지키셨음을 엿 볼 수가 있습니다. 자기수련(自己修鍊)으로 극기(克己)와 호연(浩然)의 기상(氣像)을 길으셔 지명(知命)달관(達觀)하시고 지락(至樂)과 법열(法悅)을 누리셨던 선조(先祖)들의 고귀(高貴)한 정신(精神)은 오늘을 사는 우리 후손들에게 불후(不朽)의 귀감(龜鑑)이 될 수 있다고 확신(確信)하며 삼가 발간사(發刊辭)에 대(代)합니다


1989년8월

                                               

강릉김씨 대종회장 김문기  근서


江陵金氏 大宗會長 金文起  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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