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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행실도
삼강행실도 김철명(金哲命)
이조참의 광렬(光烈)의 장자로 선조조에 제용감봉사(濟用監奉事)로 재임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피난길에 오르게되자 부친 광렬(光烈)의 명으로 3형제와 같이 가동 백여명을 이끌고 왕을 호송중 적을 중도에 만나 힘것 싸우다 부친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모친 성씨 마저 자결했다 후에 우계 성혼(成渾)의 청원으로 공의 부자와 모친에게 충효열의 정문(旌門)을 내렸다 율곡과 신독제.김집이 다함께충.효.열을 실천했다고 칭송하였고 후에 순충병의보조공신 이조참판에 추증되고 동원군에 추봉되었으며 다시 『삼강행실도』에 실렸다
영해군 기종(起宗)
소재지 : 당진군 정미면 신실리
동원군 철명(哲命)의 장자로 광해군 10년(1618)에 문과대과에 장원하고 성균관전적을 거처 예조좌랑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병조좌랑을 거처 이조에서 재임할때 1623년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왕위에 오르자 전날 이이첨(李爾瞻)이 사당(私黨)을 심기 위한 과거에 참여하여 장원하였다는 지적을 받고 청의(淸議)를 주장하는 비난을 받아 퇴임하였다 1624년 관서원수(關西元帥) 장만(張晩)이 이괄(李适)의 난(亂)을 평정할때 종사관으로 종군하여 공을 세우자 조정에서 다시 중용하여 홍문관교리와 응교를 거처 호당(湖堂)에 뽑히고 2등에 책훈되었으며
진무공신에 책록되고 영해군에 봉해젔다 그후 요직을 두루 거처 경기관찰사겸 개성부유수. 강화유수를 거처 호조판서를 지냈고 요직을 두루 거처 함경관찰사 재임중 호조판서로 소환되어 춘추관사를 겸하였다 급제한지 12년만에 호조판서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