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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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23 감무공파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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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 윤남(允南) 감무

일선군 추(錘)의 2자로 고려왕조의 운명이 다했음을 한탄하며 장단에 은거하게된 부친이 세상을 떠나고 마침내 고려가 망하자 낭천감무의 벼슬을 사임하고 송악산이 마주 보이는 임진강 건너 내포리에 은거하고 뒷산에 올라 개경을 향해 망국의 한을 삭이며 절의를 지켰다 훗날 우계 성혼(成渾)은 "이름을 버리고 숨어 삶이 마치 태어나지 않음과 같게하였고 그절의는 무덤속에 들어 아는이 없으나 지금도 도도히 흐르는 임진강물과 같구나"라고 하면서 공의 절의를 기렸다.

 

21세 의공(義恭) 진사 은일지평

감무 윤남(允南)의 2자로 진사과에 장원하였으나 벼슬을 버리고 망극의 아픔을 부친과 같이 하며 세상를 피하하여 숨어살았다 나라에서 숨어있는 학자로 임금의 특명으로 승문원 주서를 거처 사헌부지평(정5품)을 역임하였다

 

22세 상(湘) 정언. 승정원 참교

지평 의공(義恭)의 2자로 단종 2년(1453)에 증광방무대과에 장원하고 세조 3년(1457)에 별시방에서 문과대과에 급제하여 예문관봉교로 출사하였으며 사간원 정언과 헌남(정5품) 승문원참교(종3품)를 지냈다

 

23세 사기(士奇) 진사   참교 상(湘)의 장자로 진사과에 등제하고 불사하였다

 

24세 국내(國내) 진사   진사 사기(士奇)의 자,

 

25세 갑(甲) 조봉대부 의주판관

진사 국내(國내)의 장자로 무과에 급제하고 덕산현감 문의현령 위원군수를 거처 조봉대부 의주판관에 올랐다

 

27세 정탁(廷鐸) 봉훈랑   위원군수 갑(甲)의 손자,

 

28세 징(徵) 진사   봉훈랑 정탁(廷鐸)의 장자,

 

28세 휘(徽) 감역   봉훈랑 정탁(廷鐸)의 2자,

 

30세 성중(聖重) 효자 증지평

감역 휘(徽)의 자 진일(震一)의 3자인 현석(玄石)은 문인으로 4군의 유생 225인의 『효행 발천문』이 군지에 기록되어 전하고 효행으로 통선랑 사헌부 지평에 증직되었다

 

31세 규(규) 효행.

지평 성중(聖重)의 차자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과거보기를 권하였으나 부모 공양에 소흘할까 포기하였다 어머니가 병환에서 꿩고기를 원하시니 구할수없어 울면서 하늘에 소원하니 홀연히 꿩이 방안 대들보에 날아들었다. 병이 위중해지자 단지하여 수혈하니 3일간 연명하였으나 상을 당하여 3년 치상에 지극하는등 효성이 남달라 파주, 고양, 양주, 장단 유생 197명이 연명으로 효행발천문을 만들어 전하고 있다 양대가 같아 양세효자집으로 일컬어 지고 있다

 

34세 병섭(秉燮) 용양위 부호군   계해(啓海)의 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