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을 빛낸인물
가문을 빛낸인물

본문

mark.png 8 판사공 평창파

back.png

 

19세 원구(元龜) 판사

총랑 당(당)의 2자로 문음으로 출사하여 충정왕3년(1351)에 군기감 주부를 거처 승(丞)과 의제고(議濟庫)의 사(使)를 지내고 최영도원수(崔瑩都元帥)의 휘하에서 공을 세워 판사(判事)를 지냈다 후손은 평창에 거하면서 판사공 평창파조가 되었다

 

20세 윤승(允升) 밀직사. 지사사 知司事 (정5품)

판사 원구(元龜)의 장자로 문과시에 등제하여 주부로 출사하여 밀직사(密直司) 지사사(知司事)에 올랐다

 

21세 유생(有生) 군자감정 (정3품)

밀직사 윤승(允升)의 2자로 문관으로 등제되어 제용감봉사로 출사하여 주부와 판관을 거처 군자감(정3품)을 역임하였다.

 

22세 서(恕) 안주목사

군자감정 유생(有生)의 2자로 세조조 문관시에 등제되어 내직에 출사하였다가 외관직 안주목사를 지냈다.

 

23세 계손(繼孫) 감사

안주목사 서(恕)의 장자로 내자시(內資寺) 직장으로 출사하여 주부 판관첨정을 거처 군자감정으로 전임하였다가 함경관찰사겸 병마절도사로 외침의 국경수비에 공을 세우고 중종반정후 귀향하였다.

 

24세 명소(明素) 생원 증승지

감사 계손(繼孫)의 장자로 중종반정으로 시국이 혼난하여 출사하지 않고 손자 명건(命建)이 공조판서에 오르고 승지로 증직되었다

 

25세 응장(應張) 참봉 증 호조참의

생원 명소(明素)의 자로 참봉을 지내고 공의 장자 명건(明建)은 공조판서가되어 호조참의로 증직 되었다.

 

26세 명건(命建) 공조판서   참봉 응장(應張)의 장자로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27세 원보(元寶) 생원   판서 명건(命建)의 장자,

 

27세 형보(亨寶) 참판   판서 명건(命建)의 2자,

 

29세 해립(海立) 부사과   참판 형보(亨寶)의 손자,

 

29세 해운(海雲) 참봉   참판 형보(亨寶)의 자 여남(汝南)의 3자,

 

30세 세숭(世崇) 공판   부사과 해립(海立)의 장자,

 

30세 세흥(世興) 감역   참봉 해운(海雲)의 자,

 

31세 만성(萬成) 도정   참봉 세주(世周)의 자,

 

34세 병형(秉亨) 도정   도정 만성(萬成)의 증손,

 

22세 임(恁) 목사   감정 유생(有生)의 2자로 황주목사를 지냈다 (만우파조),

 

23세 신손(信孫) 판서   황주목사 임(恁)의 2자로 호조판서를 지냈다,

 

24세 눌(訥) 참판   판서 신손(信孫)의 장자로 호조참판을 지냈다,

 

25세 언홍(彦弘) 호조참의   참판 눌(訥)의 자,

 

28세 업(業) 가선   호조참의 언홍(彦弘)의 4세 대인(大仁)의 2자,

 

29세 후봉(厚鳳) 절충장군   가선 업(業)의 계자,

 

35세 연달(演達) 형조참판

조 학안(學安) 참의 언홍(彦弘)의 11손으로 가선 동추 오위도총부부총관겸 호조참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