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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 원구(元龜) 판사
총랑 당(당)의 2자로 문음으로 출사하여 충정왕3년(1351)에 군기감 주부를 거처 승(丞)과 의제고(議濟庫)의 사(使)를 지내고 최영도원수(崔瑩都元帥)의 휘하에서 공을 세워 판사(判事)를 지냈다 후손은 평창에 거하면서 판사공 평창파조가 되었다
▣ 20세 윤승(允升) 밀직사. 지사사 知司事 (정5품)
판사 원구(元龜)의 장자로 문과시에 등제하여 주부로 출사하여 밀직사(密直司) 지사사(知司事)에 올랐다
▣ 21세 유생(有生) 군자감정 (정3품)
밀직사 윤승(允升)의 2자로 문관으로 등제되어 제용감봉사로 출사하여 주부와 판관을 거처 군자감(정3품)을 역임하였다.
▣ 22세 서(恕) 안주목사
군자감정 유생(有生)의 2자로 세조조 문관시에 등제되어 내직에 출사하였다가 외관직 안주목사를 지냈다.
▣ 23세 계손(繼孫) 감사
안주목사 서(恕)의 장자로 내자시(內資寺) 직장으로 출사하여 주부 판관첨정을 거처 군자감정으로 전임하였다가 함경관찰사겸 병마절도사로 외침의 국경수비에 공을 세우고 중종반정후 귀향하였다.
▣ 24세 명소(明素) 생원 증승지
감사 계손(繼孫)의 장자로 중종반정으로 시국이 혼난하여 출사하지 않고 손자 명건(命建)이 공조판서에 오르고 승지로 증직되었다
▣ 25세 응장(應張) 참봉 증 호조참의
생원 명소(明素)의 자로 참봉을 지내고 공의 장자 명건(明建)은 공조판서가되어 호조참의로 증직 되었다.
▣ 26세 명건(命建) 공조판서 참봉 응장(應張)의 장자로 공조판서를 역임하였다,
▣ 27세 원보(元寶) 생원 판서 명건(命建)의 장자,
▣ 27세 형보(亨寶) 참판 판서 명건(命建)의 2자,
▣ 29세 해립(海立) 부사과 참판 형보(亨寶)의 손자,
▣ 29세 해운(海雲) 참봉 참판 형보(亨寶)의 자 여남(汝南)의 3자,
▣ 30세 세숭(世崇) 공판 부사과 해립(海立)의 장자,
▣ 30세 세흥(世興) 감역 참봉 해운(海雲)의 자,
▣ 31세 만성(萬成) 도정 참봉 세주(世周)의 자,
▣ 34세 병형(秉亨) 도정 도정 만성(萬成)의 증손,
▣ 22세 임(恁) 목사 감정 유생(有生)의 2자로 황주목사를 지냈다 (만우파조),
▣ 23세 신손(信孫) 판서 황주목사 임(恁)의 2자로 호조판서를 지냈다,
▣ 24세 눌(訥) 참판 판서 신손(信孫)의 장자로 호조참판을 지냈다,
▣ 25세 언홍(彦弘) 호조참의 참판 눌(訥)의 자,
▣ 28세 업(業) 가선 호조참의 언홍(彦弘)의 4세 대인(大仁)의 2자,
▣ 29세 후봉(厚鳳) 절충장군 가선 업(業)의 계자,
▣ 35세 연달(演達) 형조참판
조 학안(學安) 참의 언홍(彦弘)의 11손으로 가선 동추 오위도총부부총관겸 호조참판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