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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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k.png 2. 장자 종기(宗基) 시중(국무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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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주원할아버지의 장자로 원성왕 6년에(790)에 이찬(장관)에서 시중(국무총리)에 오르고 공이 벽골제(碧骨提: 지금의 김제)평야에 제방을 만들어 수리시설을 하고 농경정책에 기여하여 김씨가 제방을 쌓았다 하여 김제(金提)로 불여지고 있다 (참고:東史綱目.文獻備考.三國遺事)

 

공의 아들 정여(貞茹)와 장여(璋茹) 형제가 시중을 지내고 손자 양 (陽)은 정여의 아들로 헌덕왕3년(826)에 고성태수 832 무주(공주)도독으로 전임하고 흥덕왕11년(836)에 왕이 후사없이 승하하니 흥덕왕의 종제 균정(均貞)과 당질 제융(悌隆)이 서로 왕이 되고자하니 양(陽)은 균정을 옹립하다 실패하자 당숙 자사(紫絲)와 같이 산중(山中)에 은거중 민혜왕이 희강왕을 시해하고 즉위함으로 장보고와 모의하고 공이 동평장군이 되어 민혜왕의 관군을 격파하고 균정의 자 우징을 신문왕으로 옹립하였으나 즉위 3개월만에 병사하여 그의 장자 경응이 문성왕으로 즉위하여 김양에 록하고 문성왕9년(847)에 시중겸 병부령을 제수받고 나이 50에 후사없이 돌아가 경주 태종무열왕능 아래에 장사하였다.